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역사의 조난자(遭難者)가 되지 않기 위해

  • 날짜
    2018-09-14 13:28:33
  • 조회수
    774

올해 초에 조난자(遭難者)이라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저자는 22살의 나이로 휴전선에서 대남방송을 하던 주승현이라는 북한군 병사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사선(死線)을 넘어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 연세대학교에 입학해서 석박사를 해냈습니다. 부모도 친척도 없이 타지에서 어느덧 14년이란 간고(艱苦)의 세월을 보내고 지금은 이 나라의 힘찬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 젊은이가 쓴 책이 바로 조난자들입니다.

 

스물두 살에 분단선이라는 경계를 넘어온 귀순자가 서야 했던 곳은 남북한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의 위치였고 내가 마주한 것은 월남을 감행한 그 날의 겨울밤보다도 더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치열한 생존과 경쟁의 세계였다라고 토로(吐露)하고 있습니다. 분단의 비극을 어린 나이에 몸소 체험한 저자는 “70여 년 전의 해방처럼 앞으로 도래할 통일도 우리가 이룬 것이 아닌 앉아서 당하는 통일이 될까 두렵다. 그런 통일이라면 재분단과 전쟁과 같은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주동(主動)이 아닌 피동(被動)이라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곧이어 비극으로 연결된다는 역사적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 말은 우리의 가슴에 절절하게 파고듭니다. 평생을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투쟁한 김구 선생은 1945815일 일본의 패망 소식을 듣고 기뻐하시기 전에 먼저 이것은 나에게 기쁜 소식이었다기보다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라고 통탄했습니다. 전후 국제열강의 이해관계가 각축을 벌이는 역사의 현장에서 열강의 지도자들에게 우리(한국)가 이바지한 공로를 투사(透射)할 수 없을 때, 일어날 오늘의 비극을 먼저 알아차린 선견지명이었습니다.

 

19431227일 카이로 회담에서 루스벨트, 처칠, 장제스 등이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탈취한 태평양제도(諸島)를 박탈하고 또한 만주, 타이완, 펑후주다오(澎湖諸島) 등을 중국에 반환할 것을 명시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장차 자유 독립국이 된다는 조항이 삽입되었습니다. 이때 한국은 국제적으로는 최초로 독립이 보장되었습니다.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고, 한국에서는 625전란이 일어나게 되어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위태로워지자, 미국은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보호하는 첫 단계로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이틀만인 1950627일 미국 대통령 트루먼이 대만 중립화를 선언합니다. 곧이어 1954123, ‘미중(대만) 공동방위조약을 체결합니다. 또 미국은 양안관계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일관되게 대만 편에 섰습니다. 그러나 한편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왔습니다. 예를 들면 미중의 무역수지 규모를 보면 알 수 있고, 중국은 미국의 채권을 현재 1조 달러 넘게 사주고 있습니다.

 

1995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3(三不) 정책을 선언합니다. , 미국은 타이완의 독립을 지원하지 않으며 독립된 타이완을 승인하지 않으며, 타이완의 국제기구 가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타이완은 국제적 지위가 여전히 미정인 채로 존재하지 않는 정부가 통치하는 매우 애매한 조직체라는 것이 미국의 시각입니다. 그런데도 타이완이 미국을 위해 재주 부리는 알라딘의 램프인 것만큼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1979년 미국 의회를 통과한 타이완 관계법에 따르면 미국은 타이완과 비공식적 관계를 유지하고 방어무기를 판매할 권리를 보유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타이완 관계법은 미국 정부에서 타이완을 외국 정부로 대우하고, 타이완과 맺은 특정 조약의 효력을 계속 유지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 의회와 대통령은 타이완의 안보 및 사회 그리고 경제체제가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미국의 국익이 침해당할 위험이 생길 경우 이를 해결하려는 조치를 논의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과거 70년의 양안 관계와 미국의 시각을 검토해보면 미국은 본토의 공산당 정부가 타이완을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타이완 정부에 군사적 지원은 하되 타이완 정부가 본토를 선제적으로 자극해서 미국이 양안 갈등에 휘말리는 일이 없도록 적당한 수준에서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제가 중국의 양안 관계를 간략하게 설명한 이유는 우리의 남북관계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으로 시작된 남북대화와 평화 분위기가 어디로, 얼마나 갈 수 있을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큰 나라들은 언제나 자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작은 나라들은 항시 힘들고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험난한 길을 걷게 됩니다.

 

얼마 전 사드 문제로 중국에 기막힌 굴욕을 당했고, 지금은 미국에게 FTA문제로 우리의 자존심에 처절한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부터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1981년까지 주일대사, 주영대사, 주미대사 등을 거쳐 외무부 장관을 지내며 거의 반세기 동안 우리 외교의 일선을 지켜온 김용식(金溶植, 1913~1995)은 국제관계에서 강대국이란 한입으로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두 가지 이상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분단국가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정신이 번쩍 뜨는 한 마디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깨치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려워도 황해에 대화와 평화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강대국이 우리를 함부로 대하거나 가볍게 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