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죽산기념석상건립

  • 날짜
    2019-01-09 17: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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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5

! 죽산 선생님.

 

명년(2019)이면 죽산 조봉암 선생 탄생 120년이 됩니다. 이 분은 여러분 모두 아시다시피 강화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일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일찍이 조선공산당을 만든 이들 중 한 분이었으나 해방 후에는 남로당과 결별하고, 이승만 내각의 초대 농림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 5천 년 역사상 처음으로 농민이 땅을 갖도록 토지개혁의 초석을 놓으신 분이 바로 죽산 조봉암 선생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때 그 분이 토지개혁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공산화가 될 수도 있었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6·25전란이 일어났을 때, 농민들이 그 땅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남한은 공산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죽산 선생은 강화에서 태어나 전국으로 활동하신 분인데, 제헌의회와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면서 오랫동안 국회부의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이승만에게 패하고, 3대 대통령 선거는 투표에서는 이겼으나 부정 선거였기 때문에 개표에서 졌습니다. 당신은 동족상잔(同族相殘)이 일어난 엄혹한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평화통일을 내걸었습니다. 이 일로 죽산 선생은 이승만 정권의 정적 1호가 되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죽산 선생을 간첩으로 몰아서 1959731일 대법원에서 법정살인을 당하였고, 그 날 오후에 망우리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지 52년이 지난 후인 2011년 정월에 이번에도 똑같이 대법원에서 무죄가 되었습니다. 일제의 만행이 극심했을 때조차 일본의 황족이나 군인을 살해하지 않은 조선의 독립지사는 극심한 고문을 하여 죽일지언정 사형 언도만큼은 피했는데, 해방 후 우리는 김구, 여운형, 김원봉, 조봉암 선생을 비롯한 애국지사들을 체포하고, 암살하거나 또는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죽산 선생은 소련의 철의 장막, 중국의 죽의 장막 그리고 미소간의 냉전으로 이 땅의 분단을 가져온 38선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선언하고 그 정신을 만방에 선포했습니다. 저희 새얼문화재단은 지난 201145일부터 지역의 후학들과 더불어 조용히 뜻을 모아 적게는 일만 원부터 크게는 기천만 원에 이르는 정성을 모아 기금을 조성하고 이제 당신의 모습과 의지를 담은 기념물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중이지만, 미국에 있는 마틴 루터킹 목사나 중국의 적벽에 있는 주유의 기념상처럼 석상(石像)으로 제작할 생각입니다. 이것은 대법원이 죽산 선생을 무죄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인천시민들이 입을 모아 당신은 무죄라고 선언하는 겁니다.

 

저는 이것을 인천 시민 여러분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운동이야말로 인천의 역사를 한 단계 높이고, 시민의식이 고조되는, 인천 시민이 직접 역사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죽산 조봉암 선생은 강화에서 태어났더라도 강화만의 인물이 아니고, 인천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인천분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 애쓴 조봉암 선생입니다. 우리의 비참한 역사,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위해 가져오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동아시아의 지중해인 황해의 평화를 가져오려고 노력하시다가 돌아가신 죽산 조봉암 선생은 우리 인천이 기려야 할 인물이자, 대한민국의 어른이고, 아시아가 함께 생각해야 할 역사적 위인입니다.

 

몇 가지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우선, 유대인들은 자기가 어디에 살던지 자신의 나라가 지구상의 어떤 곳에 위치해 있고, 어떤 관계망 속에 있는지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 관계 속의 나를 살피게 합니다. 둘째, 자신의 뿌리인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민족의 역사 속에 위대한 인물들을 부각시킵니다. 이것들이 위대한 문명을 성취한 주변의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가운데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던 기초입니다.

 

인천은 통일이 아니더라도 남북이 서로 대화하고 소통만 한다면 대한민국 서북쪽의 막힌 도시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한반도의 중심도시가 된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또한 이 곳 인천에는 죽산 선생을 비롯해 위대하고 훌륭한 인물이 많습니다. 4·19 민주정부의 내각 수반이었던 장면 선생을 비롯해 다소 흠결은 있지만 이화여대를 설립한 김활란 박사가 이곳 인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한국 고미술의 선구자인 우현 고유섭 선생, 천재조각가 조규봉, 맹인들의 세종대왕인 송암 박두성, 판결문을 한글화한 조진만 대법원장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인천을 연구하고 그 위에서 살았던 위대한 어른들을 공부하여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인천의 뿌리가 깊어지고 튼튼해집니다. 뿌리가 약한 나무는 열매도 없고, 미풍에도 거세게 흔들리는 법입니다. <2018.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