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메이지유신 150년과 청일전쟁, 그리고 우리의 선택

  • 날짜
    2019-01-09 17: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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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 150년과 청일전쟁, 그리고 우리의 선택

 

지용택(새얼문화재단 이사장)

 

금년은 일본 메이지유신(1868) 150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치른 최초의 국제 전쟁인 청일전쟁(1894~1895)이 발발한지 123년이 지났습니다. 일본의 일부 학자나 지식인들은 중국의 속국이었던 조선 독립을 돕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 바로 청일전쟁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조선왕조가 개국한지 400여 년이 되었을 무렵 두 명의 출중한 개혁 군주인 영·정조 치세에 이르러서는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나와 우리가 일본 보다 60여년 앞서 먼저 새로운 하늘이 열릴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1800년 정조 대왕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뒤부터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조 대왕의 죽음 이후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바탕으로 나라를 개혁하고 바로 세우려던 사람들은 더 이상 세를 얻을 수 없었으며 이들 가운데에는 신분적 제약을 받는 서얼 출신들이 많아 목소리를 내기가 더욱 어려웠습니다. 정조 대왕의 급서 이후 이들은 유배당하거나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대를 이어 권력을 누렸던 노론세력들은 자기의 부()인 땅을 지키고 세를 늘리고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고인 물은 흐르지 않아 썩어 고약한 냄새와 쓰레기는 산하를 더럽혔고 일꾼을 찾아내어 힘을 실어주기 보다는 박해했습니다. 무엇보다 통탄할 일을 나라 바깥일에 무식한 것이 아니라 무지했습니다. 이러고도 나라가 1910년까지 유지했다는 것은 커다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1868년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정권을 무너트리고 메이지 천황의 왕정이 시작됐습니다. 메이지 천황의 주체세력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같은 하급무사계급(사무라이)이었습니다. 이들은 땅과 부를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유신의 성공 후에는 정부의 관료나 월급쟁이로 변신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서 국민 간에 계급이 없어졌습니다. 일본 학자들도 이런 역사적 현실을 매우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합니다.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내 것을 내려놓고 목숨을 걸고 나라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우리 조선은 1800년 이후 결국 나라가 쓰러진 1910년까지 백십 년이 흐르는 동안 나라를 책임진 사람들이 무엇을 했을까? 이후 일본은 세계로 눈을 돌렸는데 우리 조선은 도리어 폐쇄적으로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8년 만에 조선에 와서 강화도조약을 맺을 정도로 기세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것이라 믿었던 나라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의 패권을 쥐고 있었던 천하의 나라, 청 제국이 일본에게 패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어떻게 청에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당시 일본은 이탈리아에서 구입한 군함 수가 28, 수뢰정이 24척에 불과했지만, 청 제국은 독일에서 구입한 군함이 82, 수뢰정이 25척이었습니다. 군함 수로만 따지자면 일본보다 청의 군함 수가 3배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청 제국에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평양성 전투, 여순 해전 등 병력 수나 군함 수로 보았을 때, 청 제국이 일본에 패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청이 패했습니다. 청 제국의 장군들은 부패했고, 병사들은 훈련이 부족했으며 사기에서 뒤졌습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전쟁 기간 중 종군기자, 화가, 만화가, 사진 기자, 판화작가까지 자진 출정하여 일본의 전투 장면과 열의를 전 세계 및 일본 국민에게 과장하여 보도했습니다. 전쟁 중에도 징집활동, 전사자 가족 돌보기 등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의 40%를 국민이 해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많은 병사를 희생시키고 빼앗은 요동반도(여순과 대련)를 러시아·독일·프랑스 삼국 열강의 간섭으로 다시 빼앗겼습니다. 이때 일본 사람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분노와 아쉬움을 넘어 와신상담으로 마음을 굳히면서 새로운 국민국가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서 청일전쟁은 일본을 위한 전쟁이 됩니다.

 

청일전쟁이 끝나고 10년간 와신상담한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이는 당시 일본 국민이 혼연일치하여 나라를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큰 나라인 청나라와 러시아를 상대로 계속해서 승리하는 것을 지켜 본 조선의 기득권세력은 이때부터 일본에 빌붙기 시작하여 정신마저 팔아버렸으니 이들이 친일파요, 이것이 패망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당시의 집권 세력과 사대부 중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쟁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은 과거로부터 얼마나 달라져있을까요? 우리에게 새로운 하늘이 열리는 것은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일입니다. 과연 우리도 먼 훗날 후손들에게 할아버지는, 선배님은 그 때 무얼 하셨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18.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