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국가부도의 날과 깨어있는 시민

  • 날짜
    2019-01-09 17: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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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가부도의 날이란 영화가 개봉한 지 6일 만에 220만 관객이 몰렸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한국예술종합학교(영상원 전문사 과정의) 졸업문집에 실린 35세의 엄성민이란 젊은이가 쓴 “IMF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의 힘든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당신의 탓이 아니라는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라는 내용의 시나리오로부터 출발한 영화입니다. 저로서는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불과 1년 전에 경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여 OECD 정식회원국이 된 나라, 한국이 이듬해 199712월에 침몰하는 순간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IMF에 가지 말고 버텨보겠다는 강경식 당시 부총리 팀이 경질되고 그 자리에 들어온 임창렬 부총리는 임명 당일인 1119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면서도 IMF로 간다는 사실을 적극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IMF로부터 500억 달러를 빌려오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어느덧 20년이 지나 IMF 외환위기 사태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과 정부의 대처, 원인에 대해 이제 어느 정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임창렬 경제팀이 바삐 일본으로 날아가 구원을 요청할 때, 당시 일본 경제장관은 한국에 돈을 빌려주면 안 된다는 미국에서 온 공문 한 장을 보여줍니다. 당시 미국은 경제체제가 금융 산업으로 옮겨가고 있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태국, 한국 등의 자본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여러 통로를 통해 자본시장 개방을 요구해왔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를 거절하고 종전대로 자본 시장 개방 폭이 20% 이상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더욱 통절한 것은 바로 어제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한국 정부와 사전 합의하고도 서명하는 날, 당일 합의안을 거절합니다. ? 어제 합의안에 대해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한다고 느닷없는 제안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1997123일 임창렬 경제부총리와 미셸 캉드쉬 IMF 총재가 협약에 서명한 뒤에도 미국은 조건을 추가합니다. 미국 방문에서 돌아온 김기환 경제협력 특별대사는 1222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찾아 미국의 요구 조건을 전달합니다. 그 조건은 정리해고제 수용, 외환관리법 전면 개정, 적대적 인수합병 허용 등이었습니다. 이것은 말 한 마디 못하고 모든 근로자가 실업자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플러스알파는 미국에서 요구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런 내용은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에도 나옵니다.

 

중국도 얼마 전 우리에게 사드문제로 얼마나 심하게 경제 제재를 가했습니까? 이 넓은 세상에 우리를 도울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강대국들이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해서 작은 나라를 희생양으로 삼는 예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역사에는 이외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19059월 포츠머스(Portsmouth)에서 러일전쟁에 대한 강화조약을 성사시킨 공로로 미국인 최초로 19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합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이 협상의 주요 내용은 일본이 조선에서 정치·경제·군사상의 우월권을 가진다는 치욕적인 것이었습니다. 또한 미국과 일본은 이미 가쓰라·태프트 밀약(The Katsura-Taft Agreement, 1905. 7. 29.)을 통해 일본 수상 가쓰라(桂太郞, 1848 ~ 1913)와 미국 국방장관 태프트(1857 ~ 1930)가 미국은 일본이 필리핀군도에 대한 불침확약을 조건으로 조선에서 일본의 자유행동권(free hand)을 인정합니다. 이것은 루스벨트 개인문서 가운데 있었던 것이 1924년에 공개되어 알려집니다.

 

우리가 주권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시민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시민이 책임지는 문화가 체질화되는 것뿐입니다. 스스로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권리와 자유는 시민의 책임과 의무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이 먼저 변하지 않는데 사회가 변하는 법은 없습니다. 세상 모든 환경과 조건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만은 천리(天理)이기 때문입니다. <2018.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