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남의 나라 선거를 밤새워 본 까닭

  • 날짜
    2020-11-16 15:50:07
  • 조회수
    1065
 
 
▒ 남의 나라 선거를 밤새워 본 까닭
 
 

지용택(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저는 지난 며칠간 태평양 너머 남의 나라 미국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느라 밤샘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느냐가 아니라 미국 시민의 선택을 주시했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우리나라 국민이 깨어나지 않으면 어렵고 힘든 상대가 됩니다. 자기 나라와 국민 그리고 역사를 존경하는 사회 풍토가 아니면 그 어느 나라 지도자가 우리나라를 무게 있게 보겠습니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제일주의(America First)`를 내걸어 실업률도 줄이고 경제성장률도 상승시켰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미군 주둔 비용도 1조원 정도에서 5조원으로 급상승시키면서 그가 부동산업자 시절에 세입자에게 집세 받는 것보다 쉽게 받아낼 수 있었다고 자랑했습니다. 미국만을 생각하는 미국인이라면 트럼프를 싫어해야 할 이유가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나라를 운영하는 정치지도자, 더 나아가 세계를 움직이는 막강한 세력을 가진 미국 대통령이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돈만 벌면 된다는, 다시 말해 또다시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장사꾼을 선택할 것인지가 제가 밤을 지새우게 하는 관심사였습니다.

모든 면에서 힘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어째서 `미국제일주의`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정당성과 명분을 주변 우방국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설득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은 UN, WHO(세계보건기구), WTO(세계무역기구), 파리기후변화협약 등 국가 간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차버린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4년 전 선거보다 무려 700만 표를 더 얻은 트럼프 현직 대통령을 제치고 미국인들은 조 바이든(Joe Biden, 1942~ )을 대통령으로 선택했습니다.

자국의 이익과 함께 세계를 생각하는 미국인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다시 한 번 미국 국민이 세계 모든 사람 앞에서 미국을 자랑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번에 당선된 조 바이든은 “미국은 힘이 아니라 모범”이어야 한다고 힘 있게 주장했습니다. 강대국 대통령의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그러나 오랜만에 신선한 선언을 들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명년 정월까지는 현 대통령 트럼프의 임기인데도 우리는 외무장관을 비롯해서 국회 외무분과 위원장을 중심으로 여야가 차기 대통령과의 인맥을 찾고 관계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냉정한 국제질서의 현주소입니다. 사대(事大)는 고금을 통해서 또 동서양의 정치질서에 있어 기본입니다. 그러나 `사대`는 할지언정 사대주의(事大主義)로 흘러가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대주의는 나라의 영혼을 팔고 후손들의 정신을 병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맺으면서 우리 앞에 당면한 가장 큰 위기에 대해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빈부격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보다 더욱 큰 문제는 `정의(justice)`가 힘을 잃어간다는 겁니다. 얼마 전 이름난 서울 부자동네에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게 되자 일부 주민들이 반대했습니다. 단지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시험에서 일등한 사람들이 많이 주거하는, 이른바 우리 사회의 엘리트라고 이름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입니다. 물론 주민들 가운데에는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이면 백 모두의 의견이 모두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까지 장애인 학교가 그 동네에 설립되지 못했다는 슬픈 현실입니다. 소관부처도 있고 정론직필을 자부하는 언론도 이렇게 많은 사회에서 논리적으로는 모두 인정하면서도 장애인 학교 설립은 왜 아직까지 못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우리나라의 초석이 되어야 할 공동체 의식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머릿속에 지식은 많아도 지성이 없고, 일등한 사람이 일등이 아닌 사람을 무시하고,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내려다보는 세상은 사람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하고, 결국 시민의 공동체 의식이 무너진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시간은 항상 새롭게 시작됩니다. 뉴스가 뉴스를 밀어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부도덕과 부조리한 것들에 무심해지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상황에 매몰되면 마음에 병이 든 것조차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한때 민주주의의 상징이고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부러워했던 미국도 잘못하면 이렇게 무너진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우리가 미국의 현실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