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반구제기(反求諸己)

  • 날짜
    2022-02-14 08: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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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근본 사상은 어질 인(仁)으로 시작하지만, 어질 인을 어떻게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것인가에 이르면 먼저 반구제기(反求諸己)를 떠올리게 된다.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그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먼저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뜻으로 이것은 동양 철학의 근간이며 여러 경전에서 언급된다.

먼저 <중용(中庸)> 14장 “正己而 不求於人(정기이 불구어인)”은 “오직 자기 자신을 바르게 할뿐 타인에게서 일체 허물을 찾지 않으니 원망이 있을 수 없다”고 되어있다. 또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20)에는 “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군자구제기 소인구제인)”이라 하여 “군자는 모든 잘못을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모든 잘못을 남에게 돌린다”라고 했다. <맹자(孟子)> 이루상(離婁上)편에서 “行有不得者 皆反求諸己(행유부득자 개반구제기)”라 하여 “행하여 내가 기대한 것만큼 얻어지지 않을 때는 항상 그 원인을 나에게 찾아라”라고 말한다. 또 <맹자> 공손추상(公孫丑上)에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발이부중 불원승기자 반구제기이이)”라며 “궁술대회에서 화살이 정곡을 찌르지 못하여 패배하면 승자를 원망하지 말고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며 반성하라는 내용이다. 또한 진나라 여불위(呂不韋, ?~B.C 235)가 중심이 되어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 선기(先己)편에도 “反於己身(반어기신)”이라 했는데, 이 또한 같은 뜻이다.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는 것을 자기반성으로 시작하는 것이 공자님 말씀의 뿌리라고 하겠다. 따라서 자기반성 없이는 공자 사상이 성립할 수 없다.

하(夏)왕조의 17대 걸(桀)왕의 폭정을 무너뜨리고 은(殷, BC1600~BC1046) 왕조를 세운 탕(湯)왕이 훌륭한 재상 이윤(伊尹)에게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답하기를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면 천하는 다스려질 수 없습니다. 다스려질 수 있으려면 몸이 먼저 다스려져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모든 일의 근본은 반드시 자기 수련과 반성, 그리고 실천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또 <맹자> 이루상편에 “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家之本在身(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으며, 나라에 근본은 가정에 있으며. 가정의 근본은 나 개인에게 있다)”고 했다. 맹자가 국가 경영을 가정에서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고 또한 자기반성과 자기책임을 근본으로 생각 했는데 지금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나라를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의 가정과 자기 자신을 먼저 성찰하는 슬기와 용기가 있었으면 한다.

제나라 선(宣)왕과의 대화에서 맹자는 군주가 해야만 하는 첫 번째 덕목을 “與民同樂(여민동락)”이라 했는데, 백성과 더불어 즐겨 백성의 마음을 얻으라는 충고였다. 맹자가 민심을 꿰뚫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나라 왕이 묻기를 “옛날 주(周)나라 문(文)왕은 사방 70리나 되는 큰 동산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라고 묻자 맹자는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니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백성들은 그것도 작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왕은 “과인의 동산은 사방 40리 밖에 안 되는 것인데, 백성들이 오히려 크다고 생각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요?”라고 묻자 맹자는 “문왕의 동산은 사방 70리나 되는 넓은 곳이지만 백성이 풀을 베거나 나무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으며, 꿩이나 토끼를 마음대로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왕께서는 그 동산은 백성들과 함께 소유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것도 작다고 여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40리 밖에 안 되는 동산인데도 백성이 그곳에서 짐승을 수렵하면 사람을 죽인 자와 같은 형벌로 처벌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나라 안에 사방 40리나 되는 거대한 함정을 설치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이것을 너무 크다고 생각한 것 역시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이라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맹자는 근본적으로 백성이 국가나 국왕에 복속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나라가 국민을 위해 존속한다고 생각했다. 오륜(五倫)에서도 군신(君臣)은 의리(義理)로 성립되지만, 민(民)은 임금과 그 밑에서 벼슬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임금의 지위는 오직 민심에 있을 뿐이며, 따라서 민심을 잃으면 임금의 자격도 상실한다는 것이다. 군왕의 자리는 그만큼 어렵고 험한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에서 선거제도를 높이 평가하지만, 이미 2300여 년 전에 맹자는 민심이 곧 천심이고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정곡을 찌르며 말했다. 이 근래 역병으로 인해서 빈부 차이가 더욱 심해지고 소상공인들의 삶과 박봉의 근로자들은 하루하루가 힘들어 어찌할 바를 모른다. 정치 지도자들은 공정과 평등을 외치지만 이것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코로나 이후에는 빈부의 격차가 더 심해질 것이고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 온 세계가 겪어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시름은 더 한층 깊어진다.

우리 스스로가 생활 속에서 반구제기 하며 깨어 있다면, 설령 하늘을 집어삼킬 듯한 파도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도 뛰어 넘을 수 있다. 스스로 좌절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논어> 제16장 계씨(季氏)편에 말하길 “나라와 제후국의 군주는 백성이 가난할까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재산이 고르지 못할까 걱정한다. 인구가 감소할까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삶이 안전하지 못할까봐 걱정해야한다. 대체로 백성의 재산이 고르기만 하면 가난이라는 문제는 없는 것이고 온 백성이 화합하기만 하면 인구가 적어도 문제가 없으며 백성의 삶이 편안하기만 하면 나라가 기울어질 걱정도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먼 지방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오히려 나의 문덕(文德)을 닦아서 그들을 오게 하며 그들이 오면 또한 그들을 편안케 해준다고 들었다.”

여기서 “고르다(均)”라고 하는 것은 산술적 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상황에 맞는 조화(調和)로 해석해야 한다. 어쩌면 읽으면 읽을수록 이렇게 좋은 글이 있을까. 오늘의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은 한 번, 열 번, 백 번 읽었으면 한다. 학자들은 이런 글은 다른 경전에선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대통령을 비롯해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들은 왕도(王道)의 구현자들이기 때문에 천리(天吏)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하늘의 직무를 대행하는, 하늘의 심부름꾼이기 때문이라고 맹자(공손추하)는 말한다. 그래서 “하늘이 내리는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어도 스스로 지은 재앙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상서> 태갑)고 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이며 하늘이 내리는 경고가 아닌가. 말에 실제로 알맹이가 없는 거짓말을 불상(不祥)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앞으로 불길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그때그때 위기를 넘기기 위해 거짓말하지 말라는 벼락같은 금언(金言)이다. 지도자들이 위기 상황에서 거짓말을 계속하기 때문에 하늘은 천리에게 괴로움을 반복해서 내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되면 죄 없는 백성만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선거를 앞두고 표 얻기에 급급한 후보들이 앞 다퉈 20~30세대에게 여러 가지 약속을 내놓고 있다. 나는 이 나라와 미래의 주인인 청년 세대들이 먼저 젊은 피와 혜안으로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설계와 제도 개혁을 당당하게 요구하라고 권하고 싶다. 여러분은 젊다. 태양 같은 힘과 진실한 열정을 통해 당당하게 요구하기 바란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굴하게 보이면 시민은 누구나 고개를 돌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