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선양(禪讓)과 위장(僞裝)

  • 날짜
    2022-02-14 08: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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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은 생명과 힘이 있다. 고인 물은 색감이 없고 냄새가 나고 흐리멍덩하다. 그러나 썩은 물도 다시 흐르기 시작하면 소리가 나고 힘이 생기고 빛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물은 변하면서도 영원성을 갖는다. 동양의 많은 성인들은 물에 대해 찬사와 영탄을 아끼지 않았다. 공자가 어느 날 냇가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서 “흘러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지! 밤낮없이 멈춤이 없어야지!(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논어> '자한(子罕)'편에 있다. 천상지탄(川上之歎)이라는 구절로 유명하다. 공자의 말은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제자들이 끝없이 노력하라는 권학적인 내용이 짙다.


<맹자> '이루하'편에서 맹자의 제자인 서자(徐子)가 선생에게 “공자께서는 물을 보고서 '물이로다, 물이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공자께서는 물에서 무엇을 취하신 겁니까?”라고 묻자 이에 맹자가 “원천이 깊어야 밤낮없이 흘러 웅덩이를 채우고 나서는 계속 나아가서 바다까지 이르게 된다. 근본이 있으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공자께서 이 점을 취하신 것이다”라고 답했다. 지속해서 노력하면 하늘과 바다 끝이 닿은 수평선 둥근 바다로 나갈 수 있다고 격려한 말이다.

새해 대통령 선거가 있어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지도자들은 국민의 신뢰 속에 물처럼 유연하게 나가고 멈출 때를 직시하고 세상을 평안케 해주기 바란다. 세계 여러 나라 특히 열강의 움직임과 변화가 범상치 않다. 앞으로 5년은 과거 10년이나 20년만큼의 무게가 실려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느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와 국민 생존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역사는 엄격한 스승과 같아서 역사를 바르게 진실 그대로 찾아내고 배워야 한다. 옳게 배우지 않으면 어려울 때 비극과 통곡으로 반복되는 벌을 받게 된다.

원말명초의 걸출한 작가 나관중의 대표작 <삼국지연의>는 중국문학사상 금자탑이지만 진수의 정사 <삼국지>와는 거리가 멀고 허구가 많다.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보다는 조조가 돋보이며, 적벽대전의 공로자는 제갈량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황개와 오나라 명장 주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황개는 화공책을 실행하자고 제안한 첫 번째 장군이고, 손권이 하사한 호수(훗날 황개호)에서 장차 수전이 필요할 것을 미리 알고, 수군의 훈련기지로 삼았다는 사실과 조조에게 거짓 항복을 하고 기회를 틈타 불을 질러 조조군을 크게 무찌른 사실을 안다면 적벽대전의 참다운 영웅이 누구인지 자명해진다. '유비를 높이고 조조를 낮추는' 나관중의 한나라가 중심이라는 전통관념 때문에 인물 묘사에 있어 진실성을 잃은 부분이 많은데 루쉰은 “유비의 후덕함을 드러내려 하였으나 위선에 가깝고 제갈량의 지모를 묘사했으나 요술처럼 보인다”라고 했다.

역사소설도 허구가 있어야 흥미가 생기는 것이지만 진실을 알면 알수록 그 소설의 허구가 지닌 가치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중국 사람들은 요(堯) 임금과 순(舜)임금을 전설 속의 인물이라고 해도 하(夏)나라만은 역사 속의 왕국으로 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중국학계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하나라를 최초의 왕국으로 간주할 만한 고고학적 출토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맹자만이 요순시대를 이상국가라 칭송하면서 임금이 자신의 자리를 자식에게 상속하지 않고 주위에 능력 있고 덕이 있는 사람 중에 골라 오랫동안 지켜보고 나서 물려주는 것을 선양(禪讓)이라 하여 높이 평가했다. 요 임금은 단주를 비롯해 아홉 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친척도 아닌 순에게 제위를 물려주었다.

순은 요 임금 밑에서 28년간이나 재상을 지냈다. 단주가 불초하다고는 하지만, 장기간의 권력구조를 어기고 임금이 되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동안 갈고 닦은 권력구조가 자연스럽게 요 임금에서 순에게 돌아간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또 순임금 밑에 우(禹)는 17년간 재상을 지냈다. 순임금의 아들 상균이 있었지만 역시 그의 부족한 능력과 성품을 폄하하기 이전에 우의 힘이 우세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맹자의 주장대로 선양이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을까. 반대로 무력으로 순이 요 임금에게서, 우가 순임금에게서 제위를 찬탈했다는 주장이 전국시대에는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순자는 '정론(正論)' 편에서 “세속에 논자가 말하기를 '요와 순은 선양하였다'라고 한다. 이것은 그렇지 않다. 천자라 하는 이는 세위가 더없이 존귀하여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 도대체 누구에게 물려준다는 말인가”라고 했다. 한비자는 중국 고대의 법가(法家) 사상을 저술한 사람으로서 그의 저서 '충효(忠孝)'편에서 선양 형식을 맹비난하고 있다. <맹자>보다 후대에 성립한 <여씨춘추>의 '구인(求人)'편이나 또 <죽서기년(竹書紀年)>에도 “순은 요 임금을 평양(平陽)에 가두고 제위를 찬탈했다”라고 되어 있다.

선양을 주장한 맹자도 '만장장구(萬章章句)' 상(上)편에서 제자 만장이 “요 임금이 천하를 순에게 주었다는 데 그게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입니까?”라고 묻자 맹자는 “이 사람아! 그건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라고 전제하면서 하늘이 준 것(天與之)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천자(天子)는 하늘에게 사람을 추천할 수는 있지만 하늘에게 억지로 그 사람에게 천하를 주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고 말한다. 말이 없는 하늘이 천하를 준다는 것은 “하늘이 보이는 것은 우리 백성이 보는 것을 통하여 보고(天視自我民視), 하늘이 우리 백성이 듣는 것을 통하여 듣는다(天聽自我民聽)”로 귀결된다. 백성의 뜻이 아니라면 하늘의 뜻도 아니라는 말이다.

선양이란 뜻은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오히려 정권찬탈자들에게 자신의 찬탈을 합리화하려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왕망도 자신의 새 왕조를 건국하면서 전한(前漢)의 권력을 선양을 통해 합리화했다. 조조의 둘째 아들 조비가 후한의 헌제로부터 양위를 받아 위(魏)나라 초대황제가 되었을 때도 그렇다. 위진남북조의 360여년간의 무수한 정권교체 모두가 선양 형식을 통해 제위를 찬탈했다.

고려말 왕조가 무너져갈 때 공양왕으로부터 선위를 받아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다. 더구나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왕씨 후손이 아니라고 우왕, 창왕을 무참히 죽이고 선위를 해준 공양왕도 죽였다. 그러나 조선왕조 중기 이후 여러 학자들이 우왕, 창왕이 왕(王)씨가 아니고 신돈의 후손이라는 설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왕권과 파당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역사는 바로 보고 바로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