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이대사소(以大事小)

  • 날짜
    2023-02-06 13:08:26
  • 조회수
    339

▲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논어(論語)>가 공자와 제자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라면 <맹자(孟子)>는 군주와 스승, 군주와 신하, 스승과 제자의 대화 속에서 치밀하게 진리를 추구하듯 논쟁한 것이 특징이다.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이란 건물의 '인정'이란 말은 <맹자>엔 있지만, <논어>에는 없다. 나는 조선왕조의 이론적 기틀을 닦은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이 맹자의 위민(爲民)사상을 정치사상의 기초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맹자>는 제선왕(齊宣王, ?~기원전 301)이 맹자에게 질문하며 대화가 시작된다.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동산은 사방 70리라고 하던데, 그렇게 큰 것이 사실입니까?” 맹자가 기록에 그렇게 전해진다고 답하자 제선왕은 “문왕의 백성들은 그렇게 큰 동산도 작다고 했는데, 우리 백성들은 사방 40리밖에 안 되는 동산도 크다고 하니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다시 묻는다. 맹자는 “선왕의 동산은 사방 40리라 해도 백성이 마음대로 꼴을 벨 수 없고, 사냥도 할 수 없으며 왕의 동산에서 사슴을 잡으면 살인죄로 다스리니 서울 안에 큰 함정이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문왕의 동산은 백성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사냥도, 놀이도 위아래 없이 함께할 수 있으니 백성이 작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맹자는 문왕의 동산은 백성과 함께 공유한 것이란 말로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설파한다. '양혜왕 하편' 2장에 나오는 이러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2300년 전의 사상이고 이론이다. 맹자는 임금과 신하는 의리의 관계지만, 임금과 백성은 민심(民心)에 기초한다고 생각했다. 군주가 민심을 잃으면 덕(德)을 상실한 것이기에 용상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역성혁명(易姓革命)도 가능해진다. 집권자들은 당연히 맹자의 '역성혁명'을 두려워했기에 명(明)을 세운 주원장(朱元璋, 1338~1398)은 과거시험에서 <맹자>를 제외해 역사의 조롱거리를 남겼다.

 

작은 나라로 큰 나라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치열한 외교전략, 사대(事大)

선왕이 맹자에게 묻기를 “이웃 나라와 사귀는 방법(외교)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맹자는 “예, 있습니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는 이대사소(以大事小)입니다. 대국(大國)이 소국(小國)을 섬기면 하늘이 즐거워하고 천하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두렵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힘이 있으면서도 작은 나라를 잘 살피는 것은 군주가 인자(仁者)여야만 가능하고,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는 일은 군주가 지자(智者)여야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지금 세계는 양대 진영으로 갈린 패권 싸움에 작은 나라들이 그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어려워 얼마나 혼란하고 어려운가. 또 큰 나라의 책임자들이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천명하고 나서는 판에 그들이 인자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사 이래 자기 나라 땅에 제조공장을 설치해야 이익을 주겠다는 사례가 있었던가? 작은 나라의 국내 제조업 공동화는 장기적으로 어쩔 것이며 그에 따른 실업자들의 고통은 또 어찌할 것인가. 또 성주의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롯데백화점이 철수하게 된 것은 옳은 일인가.

사대(事大)와 사대주의(事大主義)란 말이 있다. 중국 주나라 춘추시대에는 수많은 봉건 국가들이 산재해 대국(大國)과 차국(次國), 소국(小國)으로 나뉘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졌고, 이때 사용한 전략이 사대였다. 쉽게 풀이하면 “형님! 형님이 하자는 대로 따르겠지만 이것만은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외교이며 사대에 해당하지만, 사대주의는 알아서 기는 나라의 주권 상실을 상징하는 말이다. 소국의 사대는 대국의 소국에 대한 자주권 보장이라는 쌍무적인 틀에서 성사됐기 때문에 조선의 사대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중론이다.

 

탈냉전의 시대, 우리의 나아갈 길

미국은 지난해 10월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에서 “탈냉전은 끝났다”고 선언하며 중국과의 패권경쟁을 공식화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 기초한 자유무역질서의 해체를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해석한다. 미연방준비은행은 지난 연초 0.25%에 불과했던 미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4.5%로 높였는데, 이것은 일 년 사이에 금리가 16배 이상 높아졌다는 의미이다.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조치는 우선 미국의 물가를 잠재우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치를 높이 들었고 현재 바이든 대통령도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이란 슬로건 아래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 패권경쟁이 시작되고 여타 나라는 블록경제로 분화되면서 양 진영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고단한 삶을 개척하게 되었음을 전 세계 80억 인구가 모두 알고 있다.

세계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한국도 지난 한 해의 추세를 보면 봄보다는 여름이 그리고 가을을 지내면서 경제성장률이 점점 더 낮아져 올해에는 1% 아니면 그 이하도 될 수 있다고 전망하는 우울한 견해가 많다. 정부 발표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지난해 무역적자가 역대 최대인 472억 달러를 기록한 것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기업들도 작년과 비교하면 수익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고 경제전문지들이 발표하고 있다. 우리는 깨어있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 어디에도 자기 나라 이익을 제치고, 우리나라를 도울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깨어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가야만 할 길은 어디인지 깨어있어야만 끌려가지 않고, 스스로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출처 : 인천일보(http://ww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