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民免而無恥(민면이무치)

  • 날짜
    2010-08-23 15: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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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자식을 둔 부모들의 마음이다. 특히 교육을 통해 자신이 성취하지 못했던 한(恨)을 자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자식이 좀더 나은 생활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이야 모든 부모들의 한결 같은 마음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고사처럼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좀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사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겉에 드러난 현상만 주목한다면 이 고사의 숨은 진의를 깨우치지 못한 것이다. 교육적으로 올바른 환경이란 단순히 좋은 학교, 학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는 것이 위장전입이다. 이제는 위장전입을 필수, 부동산 투기는 선택이란 말까지 나돈다. 물론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야 공직자라고 일반 부모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공익을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가야 할 책무가 있는 공직자가 법을 어기고, 위장전입을 한다는 것은 파장을 넘어 커다란 범죄행위가 된다. 과연 법을 어기고 자녀들을 위해 위장전입한 대법관이 다른 범법자에 대해 판결할 자격이 있을까? 위법을 저지른 장관, 검찰, 경찰 간부가 제 아무리 공정한 일을 했다고 해도 시민들이 순수하게 받아들일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우리 속담은 오랜 세월 살아 움직이는 진리이다.

인사청문회가 장관이나 대법관 같은 사회지도자들에게 탈법과 위법을 요리조리 자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면죄부를 받는 장소가 된다면 평생 청문회 한 번 거칠 일 없는 일반 시민이야 걸리지만 않는다면, 요령껏 법망을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 생각들이 우리 사회의 상식이 된다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다. 역대 정권마다 편법과 위법을 자행하며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등에 관련된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부를 거듭할수록 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니, 이제는 청문회와 여론의 질타를 받아도 당사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란 것을 아는 양 임명장만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도리어 뻔뻔해지고 있다.

이것은 단지 공직자만의 기강 문제가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과 침묵하는 다수의 시민들을 무시하는 행위다. 이제 공직사회엔 치격(恥格)이란 말조차 없어진 모양이다. 얼마 전 퇴임한 여성 대법관은 여러 로펌들이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모셔가려 했지만 모두 마다하고, 여생을 후학들을 위한 법률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이러한 분이 있기에 우리 사회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는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란 말이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공자는“정치술로 이끌고 형벌로만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형벌만 면한다면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그러나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린다면 부끄러움을 알고 감동하여 통하게 된다”고 설파했다. 제 아무리 세밀한 법망과 법률을 만들어도 사회도덕의 기본인 수치심이 메마른다면 그 많은 시민을 바르게 통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지도자는 백성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감동을 주는 사회분위기와 정서를 통해 시민 스스로 참여하도록 만드는 슬기를 발휘해야 한다.

인천에는 열두 명의 국회의원이 있고, 앞으로 차기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에는 아직도 집은 서울에 있고, 인천에는 주소만 걸쳐놓은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이들은 지금쯤 어딘가에서 인사청문회를 비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위장전입자들인 셈이다. 국회의원과 공직자는 주민등록상으로만 인천 시민이 아니라 실제 우리 지역의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는 공동체 일원이 되어야 한다. 때만 되면 말만 앞세우고, 세를 등에 업고 인천과 인천 사람을 위한다는 사이비 정치인들은 시민의 슬기와 힘으로 가려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천 시민들 가운데 많은 수가 발암물질 석면 먼지가 뿜어져 나오는 지하철, 언제 터질지 모르는 CNG버스를 타고, 일상의 피로에 시달리며 출퇴근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른다(人知坐輿樂 不識肩輿苦)”며 공직자들의 자세에 일침을 가했다. 공직을 꿈꾸는 사람, 공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항상 가슴에 새겨 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