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사회적 양극화의 책임을 묻는다

  • 날짜
    2011-05-12 19: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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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1일 302회 아침대화 1분스피치

지난 4월 20일자 <조선일보> 4면에 보도된 기사를 읽어보니 삼성·현대차·SK·LG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요 기업 그룹이 갈수록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2008년 405개이던 기업이 현재 617개로 늘었다고 하는데 지난 3년간 5일마다 하나씩 10대 그룹의 계열사가 새로 생긴 셈입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대기업이 진출하면 그 분야의 제조·서비스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킬 수도 있고, 투자를 늘려 새롭게 고용을 창출해서 국가 경제발전에 힘쓰는 것으로 격려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사를 읽어보니 보도의 논조가 사뭇 어두웠고, 저 역시 기사를 읽고 나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이들 재벌기업들은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한 것도,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R&D에 힘써 신제품을 개발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지난 3년여 동안 진출한 분야는 이미 중소기업들, 영세사업자들이 힘들게 피땀 흘려 개척해 놓은 시장에 압도적인 자본력을 바탕으로 뛰어들어 중소기업들의 사업 영역을 빼앗은 것이고, 새롭게 만들어진 계열사들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기존 사업자들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들이 발붙일 여지가 있을까?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재벌 그룹들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으로 인해 이들에게 자산(富)과 경제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 전체 매출(해외 매출 포함)은 603조3000억 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GDP의 51%에 해당(3년 전에는 GDP의 43% 수준)하며 재계 1~20위권 그룹의 매출·순이익은 각각 54%와 71%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처럼 덩치가 큰 곳으로 성장의 과실이 더 많이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21~50위권 그룹의 경우엔 매출은 36%늘었지만 당기순이익은 오히려 3.7% 감소했습니다. 재계 50위권 기업들이 이렇게 호되게 당하고 있으니 순위에 들지도 못하는 다른 중소기업들의 상황은 불 보듯 뻔합니다.

재벌 그룹들인 우리나라 GDP의 51%를 담당하고 있다면 고용 역시도 그만큼 담당하고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대기업의 순이익이 증가하고, 매출이 확대되고, 계열사가 확장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재벌그룹들의 고용은 증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주일쯤 전 국세청장이 발표한 자료를 분석한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하나같이 우리 사회가 국내외 지식인들이 예견했던 8:2 사회, 빈부의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격차사회에 진입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들이 계열사 밀어주기 등 불공정한 관행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를 밑바닥부터 긁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증대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경제의 기초를 이루는 가계 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5월 9일)자 <중앙일보>는 금년 말에 이르면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1,000조에 달하는데 이를 만 원권으로 환산해 길게 늘어놓으면 달나라는 19번 왕복하는 부지기수의 돈이라고 합니다. 늘어만 가는 가계부채는 언젠가는 터지고 말 시한폭탄과 같다고도 했습니다.

이처럼 대표적인 보수신문인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까지도 한국 경제의 사회적 구조를 염려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어렵고 어두운 곳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얼마 전 재벌 총수 가운데 한 사람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이 낙제점이나 겨우 면했다고 많은 기자들 앞에서 단오하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분의 말은 이런 사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재벌은 경제 주체 중 하나로서 이런 사태를 만든 막중한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정부와 외부 여건에서 비롯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정부를 업신여기는 것뿐만 아니라 국민을 무시한 오만한 태도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선·중앙·동아> 등 우리나라의 힘 있는 신문들도 논평 한 마디가 없었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 하는 <한겨레·경향>까지도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과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재벌의 위상은 가히 하늘을 찌르고 있구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어디에서도 대변될 수 없는 서민들의 절망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습니다.

이럴 때 지난 4·27재보선에 패배한 여당이나 승리했다고 자부하는 야당은 다함께 우리나라의 빈부 양극화를 걱정하고, 나라의 앞날을 위해 재벌 기업들이 해야 할 책무가 무엇인지를 새로운 각도에서 고민해보고, 이들의 오만함을 준엄하게 질책할 수는 없었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이제 머지않은 장래에 치러질 심판 앞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국민과의 신뢰와 애정을 쌓아가는 길일 겁니다. <2011. 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