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허시에(和諧)

  • 날짜
    2011-08-12 10: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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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허시에(和諧)`라는 말은 후진타오 국가 주석이 내건 통치 이념이자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어 가는 중국의 현실이 극복해야 할 당면 과제이기도 합니다. 화할 화(和)에 화할 해(諧)가 합쳐져 쓰인 `허시에`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선 `조화` 혹은 `화합`이란 뜻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해서 추진하는 사회상을 `조화 사회(調和社會)` 또는 `화해 사회(和諧社會)`라고 부릅니다.


중국 공산당이 1921년 7월 23일 결성된 날을 기점으로 90년이 되는 날, 북경을 떠나 상해로 가던 고속 열차 `허시에호`는 저장성 원저우(溫州)로 향하던 중 다리 아래로 추락해 40명이 사망하고 190여 명이 부상 당하는 사건이 발생해 중국 국민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고는 단순히 고속 철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모델을 대국굴기(大國屈起)해 오던 중국 사회 전체가 맞닥뜨린 위기의 징후가 아닌가 걱정하는 목소리도 매우 높습니다.


이 사고가 발생한 후 한 주일 동안 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의 관영 언론들까지 철도 관계자들과 중국 정부를 맹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중국을 대표하는 `인민일보`는 `중국은 발전을 원하지만 피로 물든 국내총생산(GDP)은 원하지 않는다`란 내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또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의 앵커 추치밍은 ``중국, 제발 속도를 낮춰, 너무 빨리 가지 마, 사람들의 영혼을 남겨두고 가지 마`라고 말하고 싶다`며 절규했습니다.


중국 `경제관찰보`의 어느 기자는 추락한 열차 속 시체 더미에 파묻혀 죽어가다가 간신히 구조된 두 살 배기 여자 아이에게 보내는 글을 1면에 실었는데, `네가 자라면 7월 23일의 어두운 밤이 변화의 시작이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날 이후 우리는 불평만 하지 않고 어떻게 권리를 지키고 행동해야 하는지 배우게 됐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지금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52세의 김진숙이라는 여성이 지상에서 35 높이의 고공 크레인에 매달려 200여일이 넘는 시간 동안 홀로 고독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노사관계란 당사자의 이해관계에 따른 문제이기 때문에 제3자가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더욱이 시장 임금만 있고 사회 임금이 보장 안 된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내 문제를 떠나 사회로, 정치로 확산되어 가고 있어 17일 국회에서 청문회까지 개최하도록 여야가 합의를 보았습니다.


국회의장까지 지낸 부산 출신 현역 국회의원이 한진중공업 사주에게 여러 번 전화했는데, 소식 한 번 없었다며 분노하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사주는 국회 청문회가 예정된 상황에서도 계속 무응답으로 일관하며 외국으로 40여일이 넘게 출타 중이다가 엊그제에서야 극비리에 귀국했다고 합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를 지향하고 여러 가지로 국가 위상이 국제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문제를 반년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를 과연 선진사회, 공정사회로 가고 있는 한국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흐르는 물도 앞에 파인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하고서는 선진사회·공정사회로 가는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는 것을 어째서 깨우치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김진숙 씨는 한국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자 강화 삼랑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한 인천 출신입니다. 뒤늦었지만 인천 시민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실 때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노사관계, 인천 출신을 떠나서 하나의 숭고한 생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데도 200일 넘게 버려져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