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백마는 말이 아니다?

  • 날짜
    2014-11-19 17: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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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들이 확고한 철학적 견해도 없이 토론에서 승리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변설에 공을 들였듯 제자백가 중에도 소피스트 같은 이들이 있었다. 송(宋)나라 사람 아열(兒說)은 변설에 능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백마(白馬)는 말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그의 변설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당시 사람들은 이 말이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논리적으로 그의 변설에 대적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열이 백마를 타고 성문을 나갈 때, 말에 부과된 세금을 관리에게 고스란히 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아열의 주장이 그저 말뿐인 헛된 것이었음을 새삼 깨우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한비자(韓非子)』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보이는데 마치 안데르센(Andersen)의 <벌거벗은 임금>이라는 우화가 연상된다. 매일 새 옷 입기를 즐기는 임금을 속여 망신 주는 사기꾼들의 재미난 이야기는 요절복통할 만한 일이다. 헛것(보이지 않는 옷)을 가지고 와서 이 옷은 고매한 인격을 지닌 능력자에게만 보이고 못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니 이 얼간이 임금은 자기체면 때문에 속아 넘어갔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사기꾼들은 이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가 행진하면 만백성이 당신을 우러러보고 따르게 될 것이라고 꼬드긴다. 임금이 벌거벗은 채 말을 타고 있어도 중신들과 백성들은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을 여는 순간 못난 사람이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터져 나온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한 마디! “우리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이 얼마나 기막히고 진실한 말인가.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그 사실이 현장에서 밝혀지게 되어 있다.


장정(長征, 1934~1936)은 중국공산당 홍군이 중국 강서성(江西省) 서금(瑞金)에서 출발하여 국민당군의 토벌을 피해 1만2천km를 도망 다니며 1936년 섬서성(陝西省) 북부 연안(延安)에 도착하는 과정이다. 모두 8만 8천여 명이 출발했지만, 연안에 도착했을 때는 불과 7천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그 참상이란 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은 마르크스(Marx, 1818~1883), 레닌(Lennin, 1870~1924)전집은 버려도, 중국 역사서인 『사기(史記)』와 『자치통감(資治通鑑)』은 언제나 휴대하여 틈날 때마다 읽었다. 훗날 북경에 진주하고 나서도 그의 서재에 마르크스·레닌 전집이 없어 소련에 밉보일까봐 비서들이 아무도 모르게 마르크스·레닌 전집을 비치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곁에서 주치의로 22년간 일하다가 망명한 이지수(李志綏)의 저서에 기록된 이야기이니 믿을 만하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이념보다 역사에서 살아있는 슬기를 배우고자 했다. 위정자는 역사의 현장을 깊이 공부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도 『삼국유사』와 단군신화에 나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 있다. 단군성조의 국가이념이고, 오늘 우리 헌법에도 그대로 살아있는 유효한 개념이다. 홍익인간 정신을 연구개발하면 인본(人本), 위민(爲民), 복지, 경제민주화, 평화, 통일 등 다양한 분야에 미칠 수 있는데도, 이 정신을 애정을 가지고 연구하고 행동하는 분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뿐인가. 사대부 일부의 타락상과 구별해서 선비 정신은 또 얼마나 숭고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정신인가.


순자(荀子, BC323~BC238) 「요문(堯問)」 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초나라 장왕(莊王)이 조정에서 정사를 잘 처리하고 나와서도 근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부 신공(申公)이 그 까닭을 물었다. 장왕이 말하길 “내가 정사를 계획하는 것이 합당하여 여러 신하들이 아무도 나의 능력에 미칠 수 없다는 것을 보고 이런 까닭으로 근심이 되어서 얼굴을 펼 수가 없소. 은(殷)나라 재상 중귀(中蘬)가 말하길 ‘제후 자신이 스스로 스승으로 모실 분을 얻은 사람은 왕자(王者)가 되고, 좋은 벗을 얻은 사람은 패자(覇者)가 되며 어려운 일을 해결해 주는 사람을 얻는 자는 나라가 존속되고, 스스로 계획을 세우며 신하 중에 자기만한 자도 없는 사람은 멸망한다’고 말하였소. 지금 나는 못났는데도 여러 신하들 중에는 나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으니 우리나라는 거의 망할 지경에 이른 듯하오. 그래서 걱정하는 것이오.”


우리나라 위정자 중에 이렇게 겸손하고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며 누가 있을까. 제발 자만하지 말고 스승을 찾아 모시고 백성과 소통하기 바란다. 하늘은 백성이 보는 것을 보고, 백성이 듣는 것을 들으며, 생각하는 것을 생각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요사이 정치권에서 시민에게 주는 메시지는 혼란하기 그지없다. 전임 정권에서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인 4대강 사업은 아직도 시비가 끊이지 않으며, 세월호 수사와 진실 규명, 전시작전통제권,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무원 연금 등 논란거리들은 많은데 어느 하나 시원하게 소통하고, 충분하게 설명되는 이야기도 없이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스승도 없고, 벗도 없으며, 앞장서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시민의 눈에 비친 것이 하늘이 보는 것이라면 이것은 현재 정치하는 사람들이 용기와 소신, 철학을 갖추지 못한 결과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뜻이다.

 

* 이 칼럼은 2014년 11월 12일자 인천일보와 인천in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