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전환기에 서서

  • 날짜
    2015-09-16 11: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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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5

1.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항복하고 줄곧 평화체제를 이어 오다가 이 근래 아베 정부 들어 전쟁도 치를 수 있는 국가로 둔갑시키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것은 대동아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을 원폭피해자로 승화시켜 결국은 서양제국주의를 막아낸 아시아의 맹주로 고착시키고 싶은 욕망에 불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역사의 굴절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미국을 등에 업고 오만방자해진 일본은 우리에겐 일제 36년 치욕의 역사 중 일부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

가슴으로부터 분노가 이는 일이나 일본에게 사죄를 기다리며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처지에서 벗어나 역사의 모순이 중첩된 험난하고 지루한 일이지만 이제는 통일의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4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민족의 생존이 가능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외교가 가능해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선 통일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광복 70주년을 앞둔 오늘의 의미가 우리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을 느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 장소였으며 남북평화의 상징이었던 금강산 관광은 외금강에서 내금강을 넘어서지 못하고 중단되었고, 개성공단은 10년 넘도록 북한 근로자 5만 3천명과 함께 일했지만 더 이상의 확대도 없이 간신히 연명만 하고 있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부끄럽고 서글픈 일이지만 그래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남북한 협의의 산물이며 외부 간섭 없이 이루어 낸 평화의 씨알이며 통일의 터전이다.

 

2.
조선총독부 직원이자 일제의 관학자로 조선을 식민통치하기 위한 연구를 발판으로 승승장구하여 출세한 다카하시 도루(高橋亭, 1877~1967)는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해 많은 저술을 남기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 중 하나가 3·1운동을 경험하고 1920년대에 저술한 『조선인(朝鮮人)』이다. 이 책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 반성하고 오늘의 일본을 좀더 깊이 있게 성찰하기 위해서 한번쯤 반드시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총론에 해당하는 「정치적 고찰」에 따르면 “조선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나라가 아닌 외교였다. 밖으로 중국, 북호(北胡), 일본에 대한 이른바 사대(事大), 수무(綏撫), 교린(交隣)이라는 삼대 방침에 따라 역대 왕과 재상이 고심참담한 역사 과정을 보냈다. 정치가의 능력도 내치(內治)의 시정(施政), 즉 부국강병의 대책에 대해서 경륜을 세우기보다는 사대교린의 수단을 연마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라며 조선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또 「후론(後論)」에서는 “원(元)에 충성하다가 명(明)에 의지하고 다음은 청(淸)에 항복하여 속국으로 예의를 다하여 극진히 섬기다가 고종 때에 와서 갑오년 일본에 의해 독립”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의 사대주의’라고 밝히면서 따라서 조선은 이제 강력한 일본을 모시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3·1운동에 대해서도 “조선인의 마음 가운데 한 부분은 일본화되었고 다른 한 부분은 미국화되어 일본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게 된 것은 조선을 위해서도 일본을 위해서도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작년의 소요(1919년 3·1만세운동)의 중심은 사실 이들 반은 일본화한 조선인, 반은 미국화한 조선이라고 하겠다. 게다가 내지(일본)에 유학한 청년들 가운데 대다수가 미국교회에 다니고 있고 그 수는 점점 늘어만 간다”라며 조선인은 원래 순종하는 민족이라 단정 짓고 있다. 조선의 독립운동이었던 3·1운동마저 서구 사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불량한 조선 젊은이들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3·1만세운동을 얼마나 폄훼하고 있는지 알만하다.

다카하시 도루는 조선인들의 성품에 대하여 “조선인의 지방지(地方誌)에 따르면 경기도, 충청도 사람들은 사슴과 같고, 전라도 사람들은 여우와 같고, 경상도 사람들은 개와 같고, 함경도 사람들은 곰과 같고, 평안도 사람들은 호랑이와 같다고 한다. 만약 일본인과 비유한다면 조선인은 고양이와 같고 일본인은 맹견과 같다고 하겠다”라면서 우리를 허약하고 순종하는 동물에 비유하지만 유독 평안도 사람들은 음험하고 날래고 사납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외의 다른 글에서도 대동소이하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평안도 사람들이 관료에 임용되지 못한 불만에서 비롯한 역사적 관행에서 찾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외에도 그는 “조선사회를 관찰해보면 정치적 동력만이 우월하고 다른 동력들은 모두 이에 종속되어 한 번 정치가 부패하면 다른 모든 사회조직의 각 분야도 함께 부패한다”거나 “오늘날에도 조선 청년 대부분은 학문을 엽관(獵官)의 도구로 간주한다”는 등 조선의 문화와 정신을 폄훼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조선의 기록문화와 역사의식에 대해 “일본의 문화정치에 반항하는 사상은 끝내 조선 역사의 날조를 꾀하기에 이르렀다. 조선의 역사는 종래 조선인들에게는 연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지도 않았다. 조선의 역사를 쓴 서적은 그 종류가 대단히 적었을 뿐만 아니라 출판부수도 매우 제한되어 있었고 특별한 사대부가 드물게 소장되었던 탓으로 일반 민간의 독자들은 역사를 볼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일반 조선인 자제는 중국 역사만 역사 과목으로만 여겨 삼한이나 삼국의 역사적 사실은 실제로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아는 바란 단편적인 영웅담 정도의 것이었다. 특히 조선조의 역사에 이르러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은 규장각 속에 깊이 묻혀서 보려고 해도 눈이 피로할 정도다”라고 말한다.

일본의 조선학연구 1세대라고 한다는 학자가 한국의 역사를 얼마나 왜곡하고 몰이해로 일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조선총독부에서 통치수단의 이론으로 강요되고 또한 일반화시킨 이론이다. 동아시아의 침략과 36년의 수탈의 역사도 모자라서, 세계 어느 나라의 식민사에도 없었던 창씨개명까지 강행했던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해 우리는 현재까지 그 여진을 앓고 있다. 뼈아픈 분단의 험로를 지금도 겪고 있지만, 아베 수상은 이에 대해 어떠한 반성도, 성찰도 하지 않았다. 더욱 슬펐던 일은 아베의 8·15 담화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한국의 일부 언론에서 “사과는 이제 그만”이라는 글이 여러 곳에서 보이는 현실이다.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사과가 아니라 그들의 진정성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3.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정세와 국내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혼란해진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멀리 중국의 후난성(湖南省) 동정호에는 멀리 장강을 바라보고 호반에 악양루(岳陽樓)가 우뚝 서 있다. 그곳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이 휘갈겨 쓴 범중엄(范仲淹, 989~1052)의 우국충절이 서린 <악양루기(岳陽樓記)>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는 너무나 유명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백성이 근심하기 전에 먼저 근심하고(先天下之憂而憂),
백성이 즐거워한 후에 즐거워한다(後天下之樂而樂歟).
아! 이러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를 따를 것인가!(噫! 微斯人吾誰與歸!)

언제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무박 4일간의 긴장된 남북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뒤 곧이어 중국으로 떠난 대통령에게 격려를 보내며 한 마디 보태고 싶다. 빌리 브란트 총리와 함께 동서독 화해의 문을 열었던 독일 통일의 설계사 에곤 바르(Egon Bahr, 1922. 3.18~2015. 8. 20)는 생전에 한반도 통일을 위해 여러 조언을 남겼다. 그는 우리의 개성공단을 놀라운 상상력이라며 극찬하면서 “접촉이 변화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통일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려면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백성과 함께 할 지도자가 없다고 한탄만 할 일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가 슬기와 인내로 사람을 찾고, 우리들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돕지 않는다. 세계 어디에도 우리를 도울 진정한 우방도, 강대국도 없다는 것을 역사에서 깨닫게 된다면 우리 민족은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통일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 이 글은 2015년 9월 9일 수요일자 인천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