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철부지급

  • 날짜
    2015-10-16 10: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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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냉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신변에 위험이 따르므로 신(神), 사람, 짐승, 나무 등에 빗대서 진실을 밝혀내는 통쾌함과 서민의 애환을 웃음으로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이 우화(寓話)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읽어 잘 알고 있는 『이솝우화』의 작자 이솝(Aesop)은 그리스의 전쟁 노예였습니다. 『이솝우화』는 약육강식의 냉혹한 현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이유로 기독교 윤리가 지배하던 중세 서구에서는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이 누락되거나 후세 사람들이 손을 대서 원본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근래 여러 학자들이 이솝의 원작을 있는 그대로 밝혀내고자 노력을 기울여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동양에도 서양 보다 더 오묘한 풍자와 해학을 녹여 진실의 무게와 철학의 깊이를 담아내고 있는 우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장자(莊子)의 『남화진경(南華眞經)』, 안자(晏子)의 『안자춘추(晏子春秋)』, 열자(列子)의 『충허진경(沖虛眞經)』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밤새워 읽어도 좋을 만큼 재미있고 보기 드문 귀한 삶의 길잡이가 되고 있으며 사자성어가 되어 오늘날까지 서민생활에서 회자되곤 합니다. 장자는 이르기를 “사물에 빗대어 서술하는 우화가 있고, 세상 사람들이 잘 아는 인물의 말을 빌려 무게를 더한 중언(重言)이 있다. 또 앞뒤가 맞지 않는 엉터리 같은 말로 사람을 홀리는 치언(癡言)이 있다.”고 했습니다. 『장자』 「외물(外物)」 편에 다음과 같은 중언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장자가 집이 빈궁해서 잘 아는 이웃 관리에게 식량을 구하러 가서 사정을 하니, “알았소. 내가 세금을 받아서 선생에게 큰 돈 3백금(三百金)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그만하면 되겠습니까?” 장자는 어이가 없었지만 분을 참고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대답했습니다. 어제 당신을 찾아오는데 길가에서 부르는 소리가 있어 돌아다보니 깊이 팬 차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서 허덕이는 붕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붕어야, 거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붕어가 대답하기를 “저는 동해의 물결에서 밀려온 해신(海神)의 신하입니다. 그대는 한 말 한 되의 물이라도 좋으니 나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알았다. 내가 지금 남쪽으로 내려가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에 유세하여 서강(西江)의 물을 끌어올려 그대를 도우면 되겠는가?” 붕어는 이 말을 듣고 화를 내면서 “나는 물이 없어 몸둘 곳이 없습니다. 한 말 한 되의 물만 있어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데, 그대의 말을 들으니 황당합니다. 차라리 일찌감치 나를 건어물 가게에 가서 찾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붕어의 절박한 상황에서는 한 말 한 되의 물이 천만금(千萬金)보다 귀하고 고마운 것인데 장자는 당장 붕어를 살리는 데는 도움이 안 되는 장황한 설계만 늘어놓았습니다.

이 근래 우리나라 지도자들 중에도 우화 속 장자 같은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체에 어디가 가장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사람마다 대답은 제각각이겠으나 저는 제일 중요한 곳은 당장 아픈 곳이라고 답하겠습니다. 눈, 허리, 위장, 목이 심히 아픈 사람에게는 모든 신경이 아픈 곳으로 쏠립니다. 당장 아파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치료약도 필요하지만, 진통제가 먼저 필요합니다. 물 없는 붕어가 호수로 가기 전에 지금 한 바가지 물이 필요하듯 절박한 사람들의 아픈 곳을 찾는 정부와 정치 지도자가 그리고 사회구조와 여론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선 하루에 네 명 이상의 사람이 자살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냉혹해서 기댈 이웃도, 진정한 친구도 없다는 서글픈 증거입니다. 그들이 이처럼 절망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은 이 사회가 자신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주지 않는 불안사회, 희망이 없는 사회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좀더 따뜻한 사회를 위한 개혁에 동참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이는 스스로 생명을 버리는 것을 부추기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이 근래 주차장이나 큰 빌딩 경비원 및 주차관리자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일자리에 대신 무인시스템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아파트도 경비원들이 줄고 무인경비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최저임금 이하의 봉급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저임금의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저임금 일터에서는 무인시스템을 금하는 제도는 불가한 것인가! 무인기계화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 엄청난 자금이 투자되고 있는데, 이것은 사람과 감성이 없는 절대복종형 기계화 구조로 사회를 변형시키는 일입니다. 일자리 창출은 어디에서 구할 것이며 노인 복지는 퇴행할 것이 확실합니다. 지도자는 현장에서 그리고 생활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한 붕어처럼 최저임금 받는 일자리마저도 해고될까 불안해 하는 근로자의 가정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본다면 내놓지 못할 정책들이 많습니다. 무인시스템이 필요한 업종에도 공동체 사회를 위한 배려로 근로자를 채용하는 곳에 대해서는 세제혜택을 준다면 어떨까?

선거가 다가오면 정치인들이 재래시장을 찾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시장 상인들 손을 잡고 물건을 집었다가 내려놓습니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보다 더 힘든 생활을 하는 서민들의 실생활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큰 정치입니다.

“왕도의 세습은 왕관뿐이다. 권력과 권위는 쟁취하는 것이다.”

이 말은 프랑스 혁명 때 나온 말입니다. 시민의 자격은 처음엔 세금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시민의 권리와 권위는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 이 글은 <인천일보> 2015년 10월 14일자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