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왜 『사기(史記)』인가? - 5 - 민초(民草) 출신인 유방은 사람을 볼 줄 알았다

  • 날짜
    2016-04-22 10:4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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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는 한(漢)제국을 건국한 유방(劉邦, BC247?~BC195)의 일대기와 치적이다. 유방은 한미(寒微)한 집안에서 태어나 보잘 것 없는 시정 건달들과 어울려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면서 한때 세월을 보냈다. 유방이 강제노력으로 진나라 수도 함양(咸陽)으로 불려간 적이 있었다. 마침 진시황의 거창한 행차를 본 유방은 자기도 모르게 장탄식을 하면서 “아! 대장부라면 응당 저 정도는 되어야지(嗟乎, 大丈夫當如此也)”라고 했다.

항우(項羽)도 진시황이 회계산을 유람하고 절강을 지날 때 숙부인 항량(項梁)과 함께 많은 군대를 앞세워 가는 진시황의 웅장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항우는 “저 황제를 내가 대신해봐야지(彼可取而代也)”라고 거침없이 말하니 항량은 항우의 입을 막고 삼족이 멸할 수 있으니 입조심하라고 충고한다. 진시황의 거마 행렬을 바라보고 말하는 유방의 배포도 크지만, 장탄식으로 시작하는데 비해 22세의 젊은 항우는 황제의 자리를 겨누는 거침없는 마음부터 달랐다.

항우의 집안은 대대로 초나라 장군을 지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항(項)을 봉읍지로 받았으므로 항 씨가 되었다. 이처럼 항우는 귀족 출신이었으나 유방의 신분은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신분 상승을 위한 전설(신분세탁)이 필요했다. 유방의 어머니가 호숫가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신선과 교합했다. 당시 천둥벼락이 요란하게 치며 주위가 어두워졌다. 유방의 아버지가 부인을 찾았을 때 그 몸에는 중국 사람이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용이 앉아 있었다. 그 후 임신하여 유방을 낳으니 유방은 용의 후손이 된다.

어느 날 유방이 길을 가는데 큰 뱀이 길을 막고 있으니 주위 사람들이 길을 돌아가자고 권했다. 술에 취한 유방은 “장사가 가는데 무엇을 두려워 할 것인가!”라며 칼을 뽑아 뱀을 두 동강내어 버리니 길이 열렸다. 유방 일행이 계속 길을 가다가 중간에 쉬고 있는데 뒤따라오던 사람이 전하는 말이 “어느 노파가 내 아들은 백제(白帝)의 아들인데 길을 막고 있다가 적제(赤帝)의 아들에게 참살당했소. 그래서 통곡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적제란 당연히 유방이 되고, 동시에 적색을 귀히 여기는 주황실의 후예가 된다. 혼란기에 우왕좌왕하는 무리들은 신기한 이야기에 끌려 유방 주위로 몰려들었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유방에게 많다는 것은 그에게 정통성과 배경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기」에서 항우는 극적인 연출이 계속되고 인간적인 고뇌가 보이지만, 이에 비해 유방은 순발력은 있으나 평면적이다. 그런데도 항우는 패배하고 유방이 한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유방의 고향인 강소성 패현(沛縣) 거리에서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이란 하나같이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다. 훗날 한나라 창업의 일등공신 소하(蕭何, ?~193)는 관리출신이라지만 미관말직(微官末職)이었고, 조참(曹參, ?~BC190)은 소하 밑에서 옥리(獄吏)에 불과했다. 패현 출신은 아니었지만 진평(陣平, ?~178)은 가난해서 다섯 번이나 시집을 갔다가 번번이 남편이 죽은 여자에게 장가를 들었고, 주발(周勃, ?~BC169)은 누에를 치며 남의 상가집에서 피리를 불어주며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천하의 명장으로 알려진 한신(韓信, ?~196) 또한 일하는 할머니에게 걸식을 하였으며 허리에 칼은 찼지만 깡패의 가랑이 아래로 기어나가는 치욕(胯下之辱)을 당하는 사람이다.

다만 장량(張良, ?~BC189)만이 한(韓)나라 귀족으로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고 뜻이 굳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이처럼 빈약한 인적자원을 가지고 천하를 통일할 수가 있었을까? 전쟁 중에 항우에게 몰려 위기에 처했을 때, 진평이 유방에게 거침없이 진솔하게 말한다.

“항우는 사람됨이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청렴하고 지조 있고 예를 좋아하는 선비들 대부분이 그에게 귀의했습니다. 그러나 논공행상을 하고 작위와 봉지를 내리는데 매우 인색합니다. 선비들에게 완전히 귀의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지금 대왕은 오만하고 예의를 가볍게 여깁니다. 청렴하고 절개 있는 선비들이 오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대왕은 작위와 봉지를 아낌없이 내리는 까닭에 청렴과 절개를 돌보지 않은 채 이익을 탐하여 수치를 모르는 자들이 대거 한나라로 귀의했습니다. 만일 양자의 결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한다면 손만 휘저어도 쉽게 천하를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왕은 내키는 대로 사람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청렴하고 절개 있는 선비는 얻을 수 없습니다.” -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서

유방은 참모 진평의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항우는 능력있는 참모조차 활용하지 못했으며 도리어 유능한 책사(策士)였던 범증(范增, BC277~BC204)까지도 의심해서 잃었다는 것은 용인술의 결정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유방과 항우가 광무산(廣武山)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설전을 벌였다. 항우가 유방에게 둘이서 자웅을 겨루자고 제안했을 때 유방은 이를 거부하고 항우의 10가지 죄상을 열거하며 비난했다. 항우가 크게 노한 나머지 숨겨둔 화살을 쏴 유방의 가슴에 명중시켰다. 그러나 유방은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저 역적이 내 발가락을 맞췄다”고 소리쳤다. 가슴을 맞았다고 하면 병사들의 사기가 꺾일 것을 염려하여 순간적으로 별 것 아닌 발가락을 맞췄다고 소리친 것이다.

유방이 상처로 인해 자리에 몸져눕자 장량은 유방으로 하여금 군중을 순시하며 병사들을 위로하니 병사들의 사기 저하를 막을 수 있었다. 또 당대 최고의 군사전략가인 한신이 북방을 모두 평정한 뒤 유방에게 제나라 가왕(假王)으로 책봉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큰 공을 세운 실력있는 신하가 군주를 위협하는 진주지위(震主之威)의 위세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유방은 크게 분노했으나 진평의 충언을 듣고 한나라가 지금 위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신으로부터 온 사자에게 “대장부가 제후를 평정했으면 곧 진짜 왕(眞王)이 되어야지 어찌 임시왕이 된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한신을 제나라 왕으로 삼았다. 그러나 훗날 이것이 빌미가 되어 한신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되는 것은 우리가 모두 아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유방의 순발력과 주위의 유능한 참모들의 계책을 받아들여 천하를 평정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 외에 더 큰 것이 유방에게는 있었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패현 마을에 이름 없는 잡초들 소하, 조참, 진평, 주발 등이 강력한 진나라가 무너지고 혼란할 때 일어나 처음에는 미미한 세력이었으나 중간에 한신, 장량 등이 합류하여 항우와 함께 관중의 사슴을 노리게 되었다.

유방이 천하를 얻고 낙양의 남궁(南宮)에서 연회를 베풀어 여러 중신들의 나라를 세우기까지의 내용을 청하여 듣고 난 뒤 유방이 던지는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그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오. 군막 속에서 계책을 짜내는 전략(籌策惟帳)으로 천리 밖의 승리를 결정짓는 일은 내가 장량만 못하고, 나라를 안정시켜 백성을 위로하고 양식을 제때 공급하며 보급로가 차단되지 않도록 하는 일은 내가 소하만 못하오. 그리고 백만 대군을 통솔하여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 일은 내가 한신만 못하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모두 천하의 인걸인데 내가 이들을 쓸 수 있었기에 한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요. 항우는 단지 범증 한 명도 제대로 쓰지 못했소. 항우가 나에게 패배한 이유요.”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놓고 결전을 계속한 기간은 5년, 그동안 이름 없는 유방의 잡초들이 대장군이 되고, 공을 세우고 나라를 건립하고 나서 재상이 되고 제후가 된 것은 그들이 쌓은 공적과 능력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중심에 유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잡초들이 재상이 되고, 대장군으로 승진하고 조정에 들어와 일을 하면서도 하나같이 훌륭한 일을 해냈으며 백성들에게 사직지신(社稷之臣)이라는 칭송을 들었으니 이것은 유방이 민초로 시작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생활에서 터득한 사람 보는 안목과 슬기였다.

큰일을 하려는 사람은 주위에 훌륭하고 유능한 사람이 많아야 한다. 사람을 선발해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은 권력자의 의지대로 할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이 공을 세우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권력자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복(福)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복이 그렇듯이 인복이란 것도 그저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방이 자기 주변의 잡초 같은 인재들에게 기회를 주고, 믿어주었으며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함께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그런 인재들이 주변에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언제나 모든 것이 그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 이 글은 2016년 4월 20일자 <인천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