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지도자의 망각(忘却)

  • 날짜
    2016-09-28 09:39:17
  • 조회수
    1175

중국의 역사에는 강의 범람, 지독한 가뭄, 곤충 떼의 습격처럼 수많은 재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홍수로 강이 범람하여 도시 전체를 삼켜 버린 예도 있었습니다. 중국 하남성 북동부에 위치한 개봉(開封)시는 춘추전국시대의 위(魏)나라, 5대 10국의 양(梁), 진(晉), 한(漢), 주(周) 및 북송(北宋), 금(金) 등의 왕조가 이곳에 수도를 건립하였지만, 강이 범람하여 사람이 살고 있던 도시가 흙과 모래로 뒤덮이고 그 위에 새로운 도시가 생겨나는 똑같은 불행이 반복되었던 도시였습니다. 그런가하면 몇 년 동안 가뭄이 들어  황제가 단을 쌓고 기우제(祈雨祭)를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아 백성들이 유리걸식(遊離乞食)하다가 결국 왕조를 갈아치우는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자연재해이지만 인류가 겪는 재난(災難) 중에 전쟁보다 더 큰 불행은 없습니다.

전쟁은 불가항력이거나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 사람이 자초한 재앙입니다. 전쟁은 인간의 허황된 망상과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장수 백기(白起, ?~BC257)는 장평(長平)에서 사로잡은 조(趙)나라 군사 40만 명을 참호를 파고 생매장하여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세계 전쟁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가혹한 사건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 3만이나 4만 명쯤 죽이는 일은 보통 일어나는 흔한 일이었다는 것은 『사기본기(史記本紀)』 중에 「진(秦)본기」편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대륙은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왕조 교체기마다 대규모 살육전(殺戮戰)이 극심했기에 1368년 주원장이 명(明)나라를 건국할 당시 인구가 6천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같은 시기 상해현 인구는 20만 명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전쟁은 어떤 명분을 앞세우더라도 피해야만 하는 재앙이며 하늘에 죄를 짓는 반인륜적 행위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우리나라도 그 규모는 작아도 여러 자연재해와 외적의 침입이라는 재앙을 극복해 왔습니다. 그 결과 비록 분단은 되었을지언정 20여 개의 동북 소수민족 중에 유일한 독립국가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저와 같은 자연재해 보다 더 위급하게 극복해야 할 엄청난 과제가 있습니다. 지금 한반도 주변은 4대 열강이 호시탐탐 자국의 이익을 노리며 한국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혈맹을 이야기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자국의 이익을 뒤로 하고 남의 나라를 돕는 국가는 없습니다. 이것이 지난 역사 속에 국가와 국가 사이에 자리 잡은 관계의 본질이며 진리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일 년 정도 앞두고 요 근래 신문마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잠룡(潛龍)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잠룡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시민의 입장에서는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남북한의 위기가 고조되어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듯한 분위기 속에서, 국론은 분열되고 가계부채는 나날이 증가해 어느덧 1,300조 원에 육박하고, 빈부격차는 OECD국가 중 최상위권이며, 임금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6배에 달합니다. 자살률은 세계 1위이고, 청년실업률은 낯 뜨거워 변명할 수조차 없습니다. 국가가 이런 난국에 처했을 때, 대통령 후보 반열에 이름을 내놓고 있는 이들이라면 시민 앞에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과 방책, 그리고 슬기와 세(勢)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 정책을 제시하고 시민 앞에서 설명하여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잠룡이란 겉모습에 취해 이름을 걸어놓고 차기나 노려보자는 태도라면 이는 시민을 너무 하찮게 보는 경솔한 행동이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이무기’는 될지언정 용이 될 수 없습니다. 하도 답답하여 정부나 정치권에 있는 분들에게 『공자가어(孔子家語)』 「현군(賢君)」편에 있는 내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망각(忘却) 증세가 심한 사람은 자리만 옮겨 앉아도 자신의 부인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라고 묻자 “그것은 심한 것이 아닙니다. 심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애공이 긴장하면서 공자에게 자세한 내용을 듣고자 했습니다. “옛날 하(夏)나라에 걸(桀)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귀하기로는 그 몸이 천자(天子)요, 부(富)하기로 말하면 사해(四海)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지만, 성조(聖祖)의 옳은 도(道)를 잊어버리고 종묘의 제사까지 폐해버렸을 뿐만 아니라 술과 여색에 빠지니 아첨하는 신하는 임금의 눈치만 살피고 틈을 내어 자기 이익을 챙기고 충성스런 사람은 입을 다물고 멀어져 갔습니다. 이렇게 되니 천하의 모든 사람이 걸을 버리고 탕(湯)이라는 사람에게 은(殷)나라를 창업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조차 망각한 예입니다.”

공자(孔子, BC552~BC479)는 춘추 말기의 사람이었습니다. 구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니 사회는 새로운 물결 속에서 혼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당시의 정치지도자에게 날카로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현실을 깊이 성찰하고, 역사와 고전 속에서 지혜를 얻어야 할 때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하겠습니다. 펄벅(Pearl Buck, 1892~1973) 여사의 소설 『대지(大地, 원제목은 Good Earth)』를 보면 먼 땅 끝자락부터 하늘을 검게 덮으며 몰려오는 메뚜기 떼를 묘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영화나 소설적 과장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입니다. 들판에 곡식이 익어가는 가을에 느닷없이 날아든 메뚜기 떼는 사람들의 1년치 식량을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온 들판을 황폐하게 만들고 사라져 버립니다. 임금 황(皇) 옆에 벌레 충(虫)자를 붙여 이 메뚜기 떼를 한자로 황(蝗)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한자의 뜻은 권력자 옆에 달라붙어 소신도 없이 아부 잘하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벌레 같은 참모들만 있다면 메뚜기 떼처럼 생각지도 못한 재앙이 들이닥친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황(蝗)이라는 글자를 뜻 깊게 성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이 글은 2016년 9월 21일 <인천일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