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관칼럼Chairmans's Column

시민이 바라는 권력

  • 날짜
    2017-03-08 17: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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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신뢰의 공동체인가. 믿음이 없는 사회에서 소통은 근본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진영(陣營)논리가 온 세상을 흔든다. 상대편을 적이며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몰아가는 힘의 논리는 우리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지옥은 도덕과 윤리가 없고 오직 복수와 죄만이 힘을 얻기 때문에 어둠의 세계로 표시된다. 세계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맞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시험용이긴 하지만, 벌써 운전기사 없이 대로를 질주하는 차량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혁신적 가치가 형성돼 가는 중이지만, 그것을 함께 공유할 그릇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인정하고 뜻을 모아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첫걸음을 내디딜 때다. 

85명의 대부호가 전 세계 인구 절반인 35억 명의 부를 소유하는 글로벌한 불평등 구조는 우리 경제구조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은 저성장 속에서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지고, 임시직조차 구할 수 없는 실업률이 사상초유의 기록을 내고 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누리는 권력과 부를 내 것이 아니라 공중으로부터 잠시 위탁받은 것이라 여기는 겸허한 생각을 품은 지도자가 있다면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가능해진다. 이것이 천하위공(天下爲公)이며 대동(大同)이고 공화(共和)라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우선주의`를 전면에 내걸었다. 온 세계가 움츠리고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볼 때 큰 나라가 자국 우선주의를 행동으로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겉으론 정의를 내세우다 나중에 뒤통수치는 것보다 트럼프는 차라리 솔직해서 그래도 나은 것이 아닌가? 그 자신이 취임사와 각종 인터뷰에서 멕시코 국경에 만리장성을 쌓고 고문과 비밀감옥의 부활을 선언한다니 이것이 솔직한 것인지 아니면 폭력을 과시하는 것인지 하늘을 보고 탄식할 노릇이다. 중국 또한 한국의 수출품에 제동을 거는 것은 미국과 다름이 없다. 경제대국이라 자처해온 일본의 아베 총리가 트럼프 당선자가 취임하기도 전부터 워싱턴으로 달려가는 모습은 어딘가 왜소해 보인다. 

지금 세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 못지않게 도시와 도시 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나아가 개인이 세계인과 함께 활동하는 것도 가능한 세상이다. 이제 대통령, 정치인, 정부, 경제인, 실력자에게만 의존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각해 스스로 통찰하고, 자립하고 협동해 나가야 한다. 느리지만 이것이 길이다. 오늘날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세계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이제 우리는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의 이익을 버리고 대한민국을 도울 나라가 없다는 것을 신념으로 가진 자가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베처럼 우왕좌왕할 것 없다. 국제관계는 자신이 지닌 실력만큼 대접받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차분하게 대비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다음 지도자에게 필수적인 덕목은 화합과 신뢰다. 

맹자(孟子)는 `공손축장구하(公孫丑章句下)`에서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天時不如地利, 地理不如人和)`고 했다. 시기도 좋고, 갖출 것은 다 가졌어도 화합과 협동이 없으면 큰일을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어느 날 자공(子貢)이 정치의 요체에 대해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군사를 든든히 갖추며 백성이 정치를 신뢰하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자공이 또 `부득이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이 셋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자 `군사를 버려라.` 자공이 또 물었다. `정말 부득이하게 한 가지를 더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입니까?`, `식량을 버려라.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기 마련이지만 백성이 신뢰하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 <논어> `안연 7` 

이름 없는 백성도 나라만큼 귀한 것이지만, 공자가 신뢰를 강조하는 것은 시대상황에서 나온 한계일 것이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가 이토록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은 부럽고 존경을 금할 수 없다. 화합과 신뢰를 얻으면 절반은 성공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더 나아가 이것을 바탕으로 용기와 지략도 필요하다. 더군다나 큰 나라가 힘자랑으로 위협해 올 때는 더욱 그렇다.

중국 역대 왕조에서 귀하게 여기는 화씨벽(和氏璧)이라는 보물이 전해온다. 이것을 지닌 자는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가 된다는 전설이 따르니 더욱 귀하고 여러 왕들이 탐할 수밖에 없었다.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이 이것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진(秦) 소양왕(昭襄王)이 사신을 보내 15개 성읍과 화씨벽을 맞바꾸자고 제의하니 작은 나라인 조나라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화씨벽을 줘도 진나라는 15개 읍성을 주지 않을 것이고, 제안을 거절하면 나라가 위태로우니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다. 소양왕은 후일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의 증조부이며 사실상 통일제국의 기반을 구축한 막강한 실력자였기에 누구도 이처럼 위태로운 호랑이 굴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때에 갈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저라도 가겠다고 나선 사람이 인상여(藺相如)였다.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인상여가 진나라에 가서 우여곡절 끝에 화씨벽을 가지고 무사히 돌아오자 그 공로로 재상이 됐다. 이때 나온 말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완벽(完璧)이란 말이다. 사지에 들어가 나라의 보물을 흠 하나 없이 무사히 가져왔다는 뜻이다. 신분도 천한 인상여가 재상에 오르자 그간 조나라를 위해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워 재상이 된 염파(廉頗) 장군은 그가 자신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염파는 인상여를 만나면 트집을 잡아 망신을 주겠다고 별렀다. 그러자 인상여는 아무 말 없이 염파를 피했다. 참다못한 주위의 참모들이 그를 떠나겠다고 불만을 늘어놓으니 인상여는 그제야 `염파 장군이 아무리 힘이 샌들 진나라만 하겠는가.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조나라에 염파 장군과 나 인상여가 있기 때문인데, 두 마리 호랑이가 서로 싸우면 둘 다 상처를 입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조나라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일세`라며 그 까닭을 설명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스스로 어깨를 드러내고 가시나무 채찍을 등에 지고(肉彈負荊, 육탄부형) 인상여를 찾아가 집 앞에서 사죄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인상여와 염파는 죽음을 함께 해도 아깝지 않다는 유명한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다.<사기 81권 참조>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진정한 사내대장부가 아니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인상여가 병사하고 염파마저 모함을 받아 물러나니 얼마 안 있어 조나라는 진나라에 무릎을 꿇었다. 훗날 한(漢)나라 대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 BC179~BC117)는 인상여의 인품을 흠모해 자신의 이름을 상여(相如)로 개칭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도 사람을 찾고 알아보고 도와야 한다. 문제는 언제나 사람이다. 요사이 인문학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학문임을 알아야 한다. 


앞서 세상 어디에도 자국의 이익을 제치고 대한민국을 도와줄 나라가 없다는 것을 정치신념으로 삼는 사람을 찾았다. 또 맹자의 화합과 공자의 신뢰를 이야기하고 인상여의 용기와 방략을 요구했다. 끝으로 이 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분단된 조국의 모순과 아픔을 뼛속까지 느끼는 사람만이 지도자의 자격이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우리는 동서독의 통일이 아니라 그 과정과 정신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전 서독 총리는 동방정책이라는 기치를 높이 들고 동지이며 실무자인 에곤 바(Egon Bahr)는 통일에 대한 방책을 차분하게 연구해 실행에 옮겼다.

의회에서 불신임이 나오고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국가반역자라고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털신을 신은 작은 발걸음 정책`으로 시작했다. 소리 내지 않고 조용조용 한 걸음씩 걷는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이 개념은 통일이 아니라 현재 가능한 것부터 단계적으로 실천해 가는 원칙이다. 훗날 독일이 통일한 뒤 동독 관료 출신들은 `털신을 신은 작은 발걸음`이 탱크나 대포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고 실토했다. 1971년 어느 날 브레즈네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에게 독일보다는 독일 총리 브란트를 더 신뢰한다고 말할 정도로 소련과 서독의 협상에서 브란트의 성실성과 진솔함 그리고 일관된 행동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외교는 국력을 바탕으로 한다고 하지만 그보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것이 브란트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다. 독일은 통일을 원한다면 통일이란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 경고했다.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를 비롯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통일을 유럽 여러 나라들이 달가워할 리 없었다. 그래서 이처럼 무서운 난관을 넘고 넘어 동서독 장벽을 무너트린 빌리 브란트가 더욱 위대한 것이다. 우리 한국도 통일이 되면 8천만 인구와 잘 훈련된 노동자, 풍부한 자원을 가진 당당한 나라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주변의 어느 나라가 좋아할까. <논어>에는 `아래로 배워 위로 통달하다(下學而上達, 헌문, 37)`라는 말이 있다. 이제야말로 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해 신뢰와 실력을 쌓아 나가야 한다. 이것이 시민이 바라는 우리나라의 진정한 국력이며 지도자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