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장원작품

  • 날짜
    2016-04-28 09:57:21
  • 조회수
    7405

제31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초등3.4학년부 시 장원
인천삼목초등학교 4학년 8반 박민서

숨기고 싶은 일

야호! 기회다.
오늘은 형이 늦게 오는 날
형 장난감을 찾다가
일기장을 보았네.

와……
거짓말도 써 있고
욕한 것도 써 있고
친구와 싸운 것도 써 있고……

휴……
가슴이 두근두근
얼굴이 뜨겁다.
어떡하지.

엄마한테 말할까?
아빠한테 말할까?
형한테 말하면
또 싸우겠지.

혼나는 것보다
숨기는 게 좋을 것 같아.
숨기고 싶은 것이
거짓말은 아니겠지.


제31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초등3.4학년부 산문 장원
용현남초등학교 4학년 4반 한아리

숨기고 싶은 일

“아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동생이 신나서 현관으로 달려가 아빠에게 안긴다.
‘쟤는 뭐가 저리 좋아.’
나는 오늘도 아빠가 들어오시는 것을 못 본 척 내 방에 숨어 있는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숨기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아빠를 차츰차츰 멀리 하는 것 같은 내 마음이다. 우리 아빠는 밤늦게 회사에서 돌아오셔서 힘든 몸이지만 동생과 나를 웃겨 주려고 애를 쓰신다. 하지만 나는 아빠의 개그가 별로 웃긴 것 같지도 않고, 별로 보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아빠에게 “아빠 재미없어, 그런 것 좀 하지 마”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어쩔 수 없이 재미있다고 밝게 웃으며, 아빠가 너무 좋은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아빠가 속상할까 봐 미안해서 내 마음을 속이고 숨겨 버렸다. 아빠가 힘들까 봐 내 마음을 숨겼지만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그 마음 때문에 내가 너무 싫어진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고 “진짜 재미있어 하는구나.” 하시며 내 마음도 모르고 나를 더 웃기게 해 주시려고 애를 쓰신다. 물론 내가 어렸을 때는 아빠의 장난을 재미있어 했고 웃겨주지 않으면 삐치고, 아빠와 인형놀이를 하며 마치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내가 점점 자랄수록 나는 나를 재미있게 해주려고 끊임없이 장난을 걸어오는 아빠에게 별로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느껴지는 아빠의 발 냄새가 너무 싫었다. 아빠는 인테리어 일을 하신다. 집에서는 쉴 시간 없이 컴퓨터 작업과 디자인 스케치를 하시고, 현장에 나가 감독을 하느라 답답한 신발을 벗지 못하고 하루 종일 신고 계셔야 한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전혀 아빠에게서 맡아보지 못했던 냄새가 어느 날은 너무 싫게 느껴졌다. 아빠가 이렇게 힘들고 피곤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 이유라고 일부러 좋게 생각하려 해도, 내 관심은 아빠에게 조금도 기울지 않고 오히려 조금 있는 관심이 더 사라지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내 마음을 알면 아빠가 얼마나 속상해 하실지 잘 알고 있기에 말을 하지 않지만 요즘에는 아빠에게 조금 더 까칠하고 화를 내며 대드는 더 큰 비밀이 생겨 버린 것 같아서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내가 커가는 과정에서 잠깐 생긴 비밀이라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숨기고 싶은 일이 아니라 예전처럼 진심으로 아빠를 사랑해서 말할 수 있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글쓰기를 통해서 아빠에게 “아빠, 내가 요즘 아빠는 모르는 마음의 비밀이 생겨서 너무 미안했어.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와서 우리를 웃겨주기 위해 더 큰 힘을 쏟아 부었던 아빠께 힘이 되어주는 딸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내가 더 많이 노력해서 우리에게 힘을 쏟아주는 멋진 아빠처럼 멋진 딸이 돼서 더 좋은 아빠와 딸이 되자”라고 말하고 싶다.
“아빠, 고맙고 많이많이 사랑해.”


제31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초등5,6학년부 시 장원
인천청량초등학교 6학년 4반 박가희

병원

“야! 야! 야!”
밖에서 친구들 목소리가 들려
병원 창으로 내려다 봤더니
저기 야구하는 민준이
저기 뛰어가는 진욱이
다 보인다

와! 나도 나가고 싶다
“야, 야, 야!”
애들을 막 부르고 싶다.

와! 나도 나가고 싶다
애들과 야구하고 뛰어놀고 싶다

병원 창 보다가
몰래 보다가

유리창이 덜컹
내 마음도 덜컹!


제31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초등5,6학년부 산문부 장원
인천부내초등학교 6학년 2반 이산

잊을 수 없는 사람

녹슬고 무거운 오래된 자전거! 방학 때마다 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다.
우리 가족이 갈 때까지 뒤뜰 앵두나무 곁에 가만히 서 있다. 외할아버지의 손길이 묻은 자전거라고, 거의 고물 수준인데도 할머니께선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셨다. 간직하고픈 추억이라도 있는 듯이 말이다.
죽은 듯 서있던 그 자전거가 우리 엄마와 아빠 손길만 닿으면 살아 숨 쉰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끔, 몸집이 아주 작은 우리 엄마가 그 자전거를 끌고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 중학교 선생님을 찾아 뵌 거다. 그것도 자전거 뒤 안장에 할머니께서 챙겨주신 야채와 정금(오야)으로 담가놓은 과일, 술 등을 싣고 말이다.
작년 여름엔 언니랑 내가 엄마를 졸랐다. 우리도 데려가 주면 안 되느냐고 말이다. 생각에 잠기시더니, 이번 딱 한번만이라고 못을 박았다.
난 사촌오빠가 타다가 두고 간 킥보드를 타고 언니는 이웃집 아줌마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가게 된 엄마의 선생님 댁, 내겐 할아버지 선생님인가?
삐그덕 칙칙 첵 치르르, 두 개의 자전거와 내 킥보드가 이상한 소리로 어울리며 좁은 오솔길과 구불구불 산길을 타고 갔다.
선생님 댁은 그 마을에서 높은 언덕을 더 올라가야 했다. 온몸이 땀에 젖었고 정말 힘들었다. 오지 말 걸 후회도 했다. 그런데 선생님 댁은 소박했지만 정말 예뻤다. 텃밭 같은 화단에는 채송화와 봉숭아, 사루비아, 백일홍이 사이좋게 키재기 하며 피어 있었다. 우리가 갔을 때 선생님은 한 손에 호미를 들고 계셨다. 머리가 백발이셨고 웃으시면, 넬슨 만델라 대통령처럼 얼굴에 주름이 많았다. 금방 쪘다고 달콤한 감자도 내어주셨다. 정말 맛있었다. 엄마와 선생님은 대화를 나누며 웃다가 심각해지다 하였다. 살다가 힘들면 많이 생각나고 힘이 된다는 분이 바로 그 백발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신기했다.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는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언니와 난 선생님 댁 뜰을 둘러보았다. 창 사이 장작 같은 나무에 둥근 구멍을 내놓고 드나드는 새를 한참 구경했다.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백발 선생님이 우리를 배웅할 때 또 놀러오라고 웃어 주셨다. 돌아오는 길에 물었다.
“엄마! 엄마는 그 선생님이 좋아?”
“그렇기도 하고 내 삶에 힘이 되는 분이셔, 늘 학생 편에서 세상을 바라보신 분, 언제까지나 잊을 수 없는 사람!”
“그럼 애인이네?”
“요것 봐라!”
진실하게 답변해 준 엄마께 난 장난을 쳤다. 엄마가 진짜 부러웠다.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에게도 앞으로 엄마처럼 잊을 수 없는 사람, 아니 선생님 한 분 생겼으면 하고 말이다.


제31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중등부 시 장원
제물포여자중학교 2학년 3반 허수진

뒷모습

그림자처럼
앞서가기 겁나
그냥 너한테 가려지는 게 편해
거울처럼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너를 따라하는 게 편해
짐처럼
누구나 다 나를 거부하는 게
많이 익숙해

부정적인 단어들은
내가 가질게
너는 항상 긍정적이어야 해
너의 뒷모습은 내가 다 감당할게
너는 앞만 보며 나를 두고
떠나가도 돼

달처럼
언제나 너에게
빛을 받을 수는 없잖아

제발 나를 돌아보지 말고 가 줘
난 어두워도 되니까


제31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중등부 산문 장원
인천신정중학교 3학년 5반 김지연

맨발

서걱, 서걱.
살점 떨어지는 소리가 귀에 박여들었다.
“안 아파?”
“별로. 시원해.”
엄마가 씨익 웃었다. 갈색 방바닥에 잘려나간 굳은살들이 점점이 떨어졌다. 하얀 각질 덩어리들이 굳은살마냥 내 눈에 박여왔다.
엄마 발은 늘 그랬다. 갈라지고, 두껍게 박인 굳은살이 여기저기서 흉하게 제 존재감을 드러냈다. 엄마, 내가 나중에 발에 바르는 크림 사줄게. 어린 내가 하는 말에 당신은 그저 웃었던 것 같다. 우리 지연이 착하네, 하며. 주름도 별로 없고 예쁜 엄마 얼굴과는 달리 발은 거친 당신의 세월을 그대로 나타냈다.
집에 있을 때도 엄마의 발은 쉬지 못했다. 배고픈 가족들을 위해, 청결한 집을 위해, 당신은 앉아서 쉴 때가 거의 없었다. 아마 발자국이 남는다면 온 집안이 당신 발자국으로 도배됐을 정도였으니.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엄마는 발의 굳은살을 밀고 있었다. 처음엔 마사지용 돌, 다음은 거친 굳은살 제거용 스틱, 그 다음은 굳은살을 잘라내는 전용 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굳은살을 밀었더랬다. 그때마나 난 물었다.
“안 아파?”
그리고 이어지는 늘 같은 대답.
“응, 안 아파.”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부모님 발을 씻겨드리라고 했다. 다 컸는데 무슨. 투덜거리면서도 엄마에게 다가갔다. 학교 숙젠데, 부모님 발 닦아드리래. 그에 웃으며 선뜻 내게 발을 내주신 당신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기특한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숙제라 생각하셨던 걸까. 어느 쪽이든, 그날의 발 씻기기는 유독 내 머릿속에 강하게 박혔다. 미지근한 물을 받아 발을 적셨다. 몽실한 비누거품을 잔뜩 내 발을 구석구석 매만졌다. 발톱이 빠져버려 한참 고생했다던 새끼발가락. 이곳저곳 부르터 갈라진 앞꿈치. 당신이 늘 날로 잘라내곤 하는 굳은살들이 잔뜩 박인 뒤꿈치.
“어우, 시원하다.”
“시원해?”
“응, 잠이 아주 그냥 솔솔 오네.”
“그래?”
어우, 좋다. 발을 주무르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안 아파?”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응, 뭐가? 그냥, 다.
“많이 아팠겠다.”
“이제 안 아파.”
고개를 숙이고 발만 매만졌다.
“우리 지연이도 있고, 아빠도 있고. 엄마 진짜 하나도 안 아파. 이렇게 발 씻겨주는 딸도 있고. 엄마 완전 호강하네.”
발의 거품을 다 씻어낸 나는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입가에 잔잔히 미소를 띄우고 눈을 감은 엄마는, 그래. 아름다웠다.
오늘도 엄마는 당신 발의 굳은살을 잘라낸다.
서걱, 서걱.
살점 떨어지는 소리가 귀에 박여들었다.


제31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고등부 시 장원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7반 박수현

모퉁이

충무로 인쇄골목,
벽과 벽이 만나자 모퉁이가 생겼다
햇빛과 그림자와 균열이
서로 몸을 부비며 부드러워지는 곳
네모난 벽의 끝자락들이
반짝, 빛나고 있다

우웅 몸을 뒤척이는 인쇄소들
종이는 사각이 칼날이다
날카로운 것들을 이야기로 만드는 사람
충무로 인쇄골목의 모퉁이로 걸어간다

복사기의 불빛 아래
비극처럼 뒤집힌 이야기
절망처럼 솟구치는 동화
얼음이지만 따뜻한 소설 같은 것들이
면과 면을 이루고 두꺼운 책이 되기 위해
색이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을 기다린다

척척 돌아나가는 인쇄기계,
베어링이 헐거워질 때까지 돌아간다
인쇄소 남자의 손끝을 지워버릴 때까지 돌아간다

아니다 이미 지문이 없는 나의 아름다운 인쇄소,
책을 엮기 위해
장갑을 벗고 한 겹 한 겹 종이를 나누고 있다

나무의 무늬를 기억하는 종이들,
밤마다 인쇄기들은 목련나무의 꿈을 꾸는지 모른다
툭툭, 흰 꽃잎을 떨어뜨려놓았기 때문이다

인쇄골목이 모퉁이에서 다시 시작된다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날카롭다,
잠깐 피가 배어나오지만 그건 아무 일도 아니다

남자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뾰족한 책의 모서리가 부드러워진다
서로를 만나 둥글어진 것들이
종이처럼, 인쇄골목 모퉁이에 쌓여간다


제31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고등부 산문 장원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7반 조연우

비밀

다분히 의도적인 일이었다. 흔히 묘사되는 말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같은 건 없었다. 어째서 모르는 사이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같은 말들로 내가 한 일을 습관화하는 사람들이 정당화 되는지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 혹은 2학년, 혹은 4학년. 정확한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내가 했던 일이 중요할 뿐이다.
같은 반 여자 아이가 처음 보는 핸드폰 고리를 가져왔다. 사과 모양의 쇠테―어째서 사과 모양인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지만―안에 주황색 젤이 차 있는 핸드폰 고리였다. 그 주황색 부분을 손으로 누르면 오렌지 향이 났다. 그 아이는 그 향을 자랑하면서 많이 누르는 아이들에게 향이 빨리 닳으면 어떡하느냐며 살짝 누르라고 핀잔을 주고 있었다. 예쁘다는 생각을 먼저 했고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그 다음에 했다.
한참 자랑을 늘어놓던 그 아이는 양껏 자랑을 했는지 제 친구들을 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때는 이상하게도 화장실을 무리지어 가는 게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나는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핸드폰 고리에 관심을 보였던 아이들은 모두 화장실로 간 것 같았다. 핸드폰 고리를 필통 안에 떨어트리는 것을 봤고, 필통의 지퍼는 열려 있었다. 나는 빠르게 필통 안으로 손을 넣어 핸드폰 고리를 꺼냈다.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수업 종이 칠 때쯤 느지막이 들어왔다. 예상대로 교실은 뒤집어져 있었다. 그 아이는 누구냐며 악을 쓰고 있었고 그 친구들은 그 아이를 위로하고 있었다. 소설이나 드라마 속처럼 범인인 게 들통날까봐 마음을 졸였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주신 건데 어떡하느냐고 그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지만 내 수중에 있는 핸드폰 고리가 다시 생길 리는 없었다.
집에 돌아와 몇날 며칠을 핸드폰 고리를 조물대며 놀았다. 훔친 것이 드러날까봐 밖에는 하고 나갈 수 없었지만 괜히 핸드폰에도 걸어보았다. 흰색인 그 아이의 핸드폰보다 검정색인 내 핸드폰에 더 잘 어울린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 아이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였다. 등교시간이 다 되도록 자리가 비어 있어 의아했는데, 담임선생님이 부고를 들고 왔다. 그 소식을 들은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 느껴지지 않았던 모든 죄책감이나 미안함 같은 것들이 그제서야 한 번에 밀려왔다. 내가 그 아이의 할아버지를 빼앗기라도 한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 꺼내본 핸드폰 고리는 이미 향을 잃은 채였다. 이제 와서 이런 것을 돌려줄 수는 없었다.
나는 대신 동그랗고 예쁜 오렌지를 그 아이의 책상에 올려두었다. 마트 가판대 앞에서 오래 서서 고른 가장 예쁜, 미안하다는 쪽지도 채 붙이지 못한 오렌지를.
서랍 깊숙한 곳에 묻혀 있지만, 나는 여전히 그 핸드폰 고리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비밀을 들키지 못한 내가 나름대로 그 아이에게 사과하는 방식이었다.
다분히 의도적인 일이었다. 오렌지 향을 맡을 때마다 그 아이의 생각이 난다. 들키지 못한 비밀이었다.


제31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어머니부 시 장원
정옥희(인천 남동구 논현동)

안부

종교가 없는 어머니는 돌멩이만 보아도 신이며 바람이 크게 불어도 신의 노여움이다 가지 끝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조차 환생한 조상인지 안부를 물어 넙죽이 절을 한다

새벽이 걸어오는 시간 들 바람소리에도 귀 기울여 안부를 묻는다
바다 깊은 물 속 허연 산호초에게도
과일을 내밀고 떡을 내어놓고는
안부를 묻는다

나무도 새도 바다 속 모래까지도 어머니의 종교인가
들녘 밭일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전 첫 숟가락은 언제나 산천에 뿌려지고 어린 풀꽃부터 찬물이 순서다

어머니가 쓰러지던 날 종교도 쓰러졌다
나뭇가지의 새는 날지 않았고 바람도 없어졌다
꽃과 과일이 어머니의 땅에 차려져
고개를 숙이고
돌담으로 빙 둘러진 곁에 작은 새 한 마리와 풀꽃이 어머니 안부를 묻는다

뿌리를 닮은 가지는 별 가까이 묻어두고
단단한 비석은 시간을 멈추게 하며
새와 들꽃의 안부를 물었다

한참 후 단단한 비석은 바람소리를 들으며 벌떡 일어섰다


제31회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
어머니부 산문 장원
김정임(경기 평택시 독곡동)

화해

“너 어디 가? 못 가, 이 도둑년아.”
엄마의 악에 받친 고함에 야근 내내 짐짝처럼 켜켜이 짊어지고 있던 내복을 벗다 말고 후다닥 튀어 나갔지만 유난히 배만 뚱뚱하고 팔 다리는 메마른 엄마는 벌써 보건소 방문 건강관리원의 멱살을 잡아 휘두르고 있다.
“도둑년아, 내 놔!”
“엄마, 놔. 이 손.”
“악― 할머니. 내가 어쨌다고. 케―엑!”
온 몸에 땀범벅이 돼 간신히 둘을 떼어놓자 시위하는 긴 울음과 육두문자를 쏟아내며 엄마는 방바닥을 두드려댄다.
“죄송해요.”
“아니, 내가 뭘, 당뇨 체크하고 주간 보호소라도 보내시든지, 치매시라면서 힘이…….”
거실 바닥에 흩어진 파스며 설문지 혈당측정기를 가방에 허둥지둥 구겨 담은 복지사는 횡설수설하며 단추가 떨어진 윗옷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신발에 마구 발을 구겨 넣고 낡은 아파트 계단을 구르듯 내려가 버린다.
집에서 10분도 안 되는 시장통에서 “여기가 어디야?” 길을 잃고 헤매는 엄마를 찾아 돌아온 날부터 끝이 없는 절벽으로 추락하는 듯하다.
아버지의 폭행, 외도 때문이었을까? 아버지의 가출 이후로 엄마는 다리미, 연탄집게, 냄비뚜껑까지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매질을 했고, 늘 그 끝에는
“나가 죽어! 너 때문이야!”
“니가 딸로 태어나서 그래.”
“너도 그 새끼처럼 화냥년이지?”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나가는 건 늘 엄마였고 곪아터진 상처에 딱지가 앉을 때쯤 돌아와 아직 죽지도 나가지도 않은 굶주린 나를 더 때려주곤 했다. 그리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구걸로 끼니를 때우던 어느 겨울 고아원 앞에 나를 두고 도망쳤다. 울었던가? 추웠나? 무서웠나? 기억이 없다. 그저 그 긴 밤을 쉬지 않고 수없이 엎어지고 일어나며 혼자 집을 찾아갔었다.
“무서운 년.”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며 잘근잘근 씹던 엄마의 얼굴이 40년이 훌쩍 넘어 50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엄마가 당뇨합병증으로 쓰러져 20년 넘게 내 곁에서 머물며 이제 사위 앞에서조차 속옷을 내리고 거웃을 보이며 오줌을 지려댄다.
“내가 오줌을 쌌다고? 나 아닌데, 니가 내 방에 쌌지?”
배시시 사위를 향해 눈웃음을 치는 엄마를 보며 명치끝에서 불덩이가 펄펄펄 끓어오른다.
야간 근무를 끝내고 땅바닥이 다리를 푹푹 잡아당겨 질질 끌며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서기 무섭게
“2층 아줌마, 할머니 좀.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닌데…….”
아래층 할머니의 손가락질 끝에는 베란다에서 윗몸을 쑤욱 내민 엄마가 개발붐이 불어 뭉텅뭉텅 잘라진 건너편 야산 끝자락 어디쯤을 바라보며 중얼중얼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다.
비행장 옆에 지어진 20년이 넘는 쇠락한 아파트는 베란다 가득 엄마의 검버섯 빛깔 곰팡이가 피었다. 얇은 유리창은 군용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나 작은 바람에도 찢어져 유리파편을 퍼부을 듯 흔들린다. 바람 부는 날이면 밤이고 낮이고 신경정신과에서 처방한 졸민정*으로도 잠들지 않고 쌩쌩한 엄마는 창밖을 내다보며 당신의 눈에만 보이는 누군가에게 욕을 하고, 킥킥대다, 소리를 지른다.
엄마의 추락을 방지한다고, 이웃의 소음 피해를 줄여 볼 거라고 베란다 섀시를 새로 하고 방범창을 촘촘히 설치하던 날. 엄마의 손이 닿지 않을 곳에 자물쇠까지 달고 나자 집 자체가 완벽한 정신병원의 보호 병동 같아 보였다. 오로지 드나드는 것은 나와 내 온전한 가족들 뿐. 엄마와 나는 같이 갇혀 버렸다. 더 이상 고아원 앞에서 손을 잡아 빼고 뛰다시피 달아날 수도, 배를 곯고 버려진 채 누워있는 나를 손에 잡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으로 살이 갈라질 때까지 때릴 수도 없는 작고 냄새나는 몸뚱이로.
코를 썩어내릴 듯한 악취와 독한 락스 냄새가 뒤섞여 토악질이 올라온다. 방바닥에 바로 락스를 쏟아 부어 문질러 댄다.
“딸~”
밤새 온 방에 오줌을 지리고 요강을 그득 채워놓은 엄마는 구부정한 몸을 더 작게 움츠리며 배실배실 웃는다.
“딸~ 배고파.”
“기다려.”
“배고파.”
“기다려, 좀! 요강에 손 넣지 말랬지!”
“아직은 우리도 알아보시고, 불쌍하잖아. 너랑 저렇게 같이 있고 싶어 하는데…….”
녹음기 버튼을 누른 듯 같은 말, 같은 표정만 반복하는 남편.
‘왜 하필 나였을까? 왜 하필 나 같은 여자를 마누라로 만나 이런 꼴을 참고 살아야 할까.’
남편의 큰 눈을 바로 바라보기가 두렵고 미안하다.
방이며 거실 코너마다 달아 놓은 방향제는 그 사이 비었는지 “칙― 칙―” 빈 소리만 허공에 뿜어낸다.
방바닥에 오줌 자국은 왜 이리 닦아도 닦아도 그대로인지 알 수가 없다.


* 졸민정 : 수면치료 및 진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