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새얼전국학생/학부모백일장 장원작품

  • 날짜
    2018-05-03 10:11:29
  • 조회수
    5293

각 부문별 장원작품

2018년 새얼전국학생‧학부모백일장 장원

초등 3·4학년부 시 장원
인천구산초등학교 4학년 신지안

심심한 날

내 동생은
재잘재잘 질문도 많고
꽁알꽁알 말도 많다
내가 심심할 틈이 없다

말은 많이 하는데
하나도 안 통한다
잘못을 지적하면
내 말은 하나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친구와 놀러 갈 땐
귀신같이 따라온다

난 혼자가 되고 싶다
심심해져 보고 싶다

어느 날
동생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다
폐렴이라는 병에 걸렸다

난 혼자가 되었다
난 자유를 얻었다

혼자 게임도 실컷 하고
혼자 책도 읽고
혼자 친구랑 놀러 간다

그런데 심심하다
그리고 허전하다

아! 이제 알겠다
게임은 역시 둘이 해야 맛이다
이야기는 주고받아야 재밌다
맛있는 건 뺏어 먹을 때 더 맛있다
친구랑 놀 때 깍두기도 필요하다

오늘은 정말 심심한 날이다
심심한 날은 외로운 날이구나
심심한 날은 동생이 그리운 날이구나
심심한 날은 재미없는 날이구나
심심한 날은 별로구나

 

초등 3·4학년부 산문 장원
인천성리초등학교 4학년 황성아

딱 한 번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앙상했던 나뭇가지가 초록색 옷을 입고 앙상했던 나뭇가지가 초록색 옷을 입고 다시는 필 것 같지 않았던 꽃들도 알록달록 예쁜 옷을 입고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모든 생명체를 부활시키는 봄이 오니 사람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넘친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마냥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작년 봄에 친할아버지께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간혹 TV에서 할아버지랑 같은 병에 걸린 환자들을 보면 나의 마음은 더 안 좋았다.
솔직히 나는 할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다가 곧 다시 우리 집으로 오실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는 끝내 오시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할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지금도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아른거린다.
병원에서 할아버지가 더 이상 힘들다고 할 때 나랑 내 동생은 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병원에 갔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에 보았던 멋진 할아버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간경화로 복수가 차올라 배가 남산만큼 부풀어 오르고 인공호흡기를 한 할아버지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무섭고 두려워서 침대 곁으로 가까이 가기 싫었다.
하지만 내 동생은 달려가서 할아버지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눈 좀 떠보세요!”하고 말했다.
동생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나도 두려움을 조금은 떨쳐버리고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우리들의 바람과 달리 할아버지께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을 감으셨다.
지금도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속상하고 후회된다.
할아버지는 매일 내 손을 꼭 잡고 등하교를 시켜주셨는데 나는 할아버지 모습이 변했다고 해서 선뜻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을까! 봄이 오니 요즘 따라 할아버지 생각이 더 자주 난다.
딱 한 번만 할아버지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다시 보면 할아버지 옆에서 같이 있어 주고 할아버지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제일 먼저 안아드릴 수 있는데….
할아버지, 그때는 제가 미안했어요.
할아버지가 저에게 주신 사랑은 하늘처럼 넓고 바다처럼 깊은 거였어요.
할아버지 제 꿈속에 한 번만, 두 번도 아니고 딱 한 번만이라도 나타나 주세요.
제가 그때 선뜻 잡아드리지 못했던 손을 잡아 드릴게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어요.

 

초등 5·6학년부 시 장원
인천학산초등학교 5학년 배찬들

동영상

몰래 동영상을 보다가
방문이 벌컥 열렸다
“너 뭐 하니?”
순간 내 몸이 꽁꽁 언다
“엄마, 죄송해요. 그만할게요.”
더 하고 싶다
그렇지만 지옥에서 온 도깨비가
날 혼내러 올 거 같다
몰래 보는 동영상은 정말
아찔하다

 

초등 5·6학년부 산문 장원
인천대화초등학교 5학년 박서연

“언니가 먼저 했잖아.”
오늘도 어김없이 언니와 나의 싸움이 시작됐다. 티격태격 우리가 다투는 소리를 들은 엄마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 또 싸워?”
엄마가 오시면 혼이 날 걸 난 알고 있었다. 엄마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불안한 나머지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였다. 화를 삭이지 못한 언니가 나의 다리를 퍽하고 찬 것이었다.
나의 눈에는 금세 서글픈 눈물이 고였다. 그 순간 엄마가 오셨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나의 모습에 당황한 눈치였다.
 화난 목소리로 이유를 묻는 엄마 앞에서 “음,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어….”라며 언니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자 엄마는 나에게도 물으셨다.
“서연이 왜 울어?”
나는 아프기도 했지만 방심한 순간 언니에게 당한 것이 억울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언니가… 흑흑… 언니가 발로 찼어, 엉엉엉.”
“엄마! 엄마! 박서연이 먼저 시비 걸었다고.”
“그렇더라도 동생을 때리면 안 되지. 먼저 때리는 사람이 잘못한 거랬지.”
엄마에게 혼이 난 언니가 쏘아보았다. 언니와 나는 다른 공간에 분리되었고 그제야 나는 울음이 그치고 언니가 찼던 내 다리를 살펴보았다.
빨갛게 멍이 들어 있었다. 저녁을 먹고 잠을 자기 전까지 다리가 욱신욱신 쑤셨고 언니가 너무 미웠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언니와의 냉전이 시작되었다.

하루를 마치고 모여 저녁을 먹을 때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대거나 각자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엄마에게 서로 털어놓으려고 시끌벅적했던 저녁 식탁이 조용해졌다.
언니는 집에서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나를 본체만체했다. 언니의 친구들이 “서진아! 네 동생 있다.”라고 말해줘도 그냥 휙 지나가 버렸다.
무안했다. 그리고 나는 다리에 생긴 멍보다 언니와의 냉전으로 생긴 마음의 멍이 더 아프다는 걸 느꼈다.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언니를 보면 나도 끼어들어 물어보고 싶은데…. 엄마에게 보여준 그 사진 나도 보고 싶은데….
나는 이제 언니와 화해하고 싶은데, 언니는 아직 나와 화해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휴, 어쩌지?’ 예전처럼 언니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으로 고민하던 중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서는 쿠폰을 모아 수요일마다 상품을 산다.
그중 언니가 가지고 싶어 했던 지갑이 있었는데 내가 그 지갑을 선물로 주는 것이다.
나는 열심히 쿠폰을 모았고 드디어 기다리던 수요일이 되었다. 다른 아이가 그 지갑을 사 가기라도 할까 봐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달려가 드디어 그 지갑을 샀다.
나는 언니가 집에 오기 전에 언니 책상에 수줍은 편지와 함께 선물을 올려두었다.
언니가 돌아와 방으로 들어갔다. 두근두근 설렜다. 언니의 반응이 어떨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잠시 후 언니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연아, 지갑 네가 샀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잔뜩 풀어놓았다.
그동안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다.
비록 다리에는 멍이 들었지만, 그 멍으로 인해 언니와 내가 더욱 가까워진 것 같아서 뿌듯하다.


중등부 시 장원
청량중학교 3학년 장진희

손가락

백상지 위로 적힌 네 이름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손가락 끝이 까매지도록
네 이름을 문질렀다

뭉개버리고 싶었던 건
네 이름이 아니라
내 그리움이었을 거다

 

중등부 산문 장원
청학중학교 3학년  장가은

라면

나는 무엇이든 음식을 먹고 나면 억지로 게워내고는 했다.
거식증이라고 했던 것 같다. 아님 폭식증이었던가. 이유는 간단했다. 살찌고 싶지 않았다.
내게는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보통 사람들처럼 살 자격이 없다고 항상 생각했다.
2학년 여름 즈음부터였다. 하복을 입은 다른 아이들의 마르고 군살 없는 다리를 보며 내 몸을 미워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럴 필요 없었다지만, 몸에 혐오감이 들기 시작했던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여름부터 올해 겨울까지 나는 일주일에 한 끼만 먹는 생활을 했다. 그로부터 되돌아왔던 것은 늦은 밤이나 새벽 중의 폭식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기면증. 그건 가히 피폐 자체의 생활이었지만, 나는 차라리 피폐한 생활이 나았다.
그렇게 생활하지 않고서는 이유 없이 찾아드는 우울과 불안을 버틸 수 없었다. 죄책감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겨울에는 아무것도 않고 하루 중 16시간씩 자고는 했었다.

그랬던 내가 보란 듯 생기 있는 얼굴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라면을 먹었던 날의 일 덕분이다.
자학행위를 가족에게 들킨 건 2월이었다. 나는 상담치료센터를 다니기 시작했고, 큰 언니는 내게 최소 하루 한 끼는 꼭 먹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나는 그 부탁이 썩 내키지 않았다. 단순한 반항심으로 더더욱 열심히 굶었다.
새벽의 폭식도 없었다. 학교에서 밥 먹는 체하려고 급식을 받아 밥알 몇 개 깨작댈 뿐이었다.
그랬더니 괘씸하게도 내 위장이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것이었다.
악으로, 깡으로 밥을 일주일 넘게 제대로 먹지 않았던 날들. 내 기억에 그건 금요일이었다.
나는 라면을 먹기로 마음먹었다.
배가 너무 고팠다. 토요일인 내일이면 또 의미 없이 상담센터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던 저녁, 밥은 챙겼냐는 엄마의 전화에 그만 라면을 샀다고 답해버렸다.

엄마가 집에 돌아왔을 때, 싱크대엔 물로 씻어낸 라면 컵이 있어야 할 터였다.
언니는 과제로 늦는다고 했었다. 옷을 챙겨 입고 집 앞 마트에서 작은 컵라면을 하나 샀다.
문제는 그것을 정말로 먹는지 마는지. 눈치 빠른 우리 가족이 내 거짓말을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나는 결국 라면을 먹기로 했다. 끼니라고 할 만한 음식을 먹은 건 일주일하고도 사흘만의 일이었다.
금식해본 사람은 안다. 긴긴 금식 후 첫 음식은 아주 강렬하다. 여러 의미로 맛있다기보다는 역겹다는 뉘앙스로 향도, 맛도 평소의 곱절로 다가온다. 입안에 있는 음식이 곧장 비강에 닿는 느낌. 그러나 어쩐지 입에 밀어 넣는 라면에 구역질이 나지 않았다.

물로 입안을 몇 번이나 헹궜던 내 행동이 창피하도록 맛있었다. 분하게도 나는 그 라면을 다 먹고 포만감에 기분이 좋았다.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어 토해낼까 고민했지만, 결국 전부 삼켰다. 그리고 울어버렸다. 눈물에 이유는 없었다. 뭐, 억울하거나 서글프겠거니 싶다. 원래 눈물에는 이유가 없는 일이니까 내 눈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질질 눈물을 짜낸 후, 혹여 언니가 올까 급하게 세수를 하며 나는 생각했다.
울어도 된다고. 눈물을 보여도 될 상대라면 눈물을 숨기지 말자고. 거울 속 나에게 너는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끼니를 챙겨도 된다고 라면 하나에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숨어들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 어느 인간이 라면 하나 먹을 자격조차 없겠느냐고.
나는 라면을 먹은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나는 밥 먹는 나도 용서하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이 자리에 왔다. 오늘은 아침도, 점심도 제대로 챙겨 먹었다.
그리고 어떤 죄책감도 후회도 없다. 끼니를 챙기니 기분도 좋고 힘이 나는 것처럼 신이 난다.
나는 건강해도 괜찮다.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인스턴트 라면을 먹어도 괜찮다.
이 글을 읽게 될 최소한 한 명의 사람에게 나는 전한다. 나는 살아가기로 했다. 최소한 인스턴트 라면이라도 먹으며 살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당신 또한 그러했으면 좋겠다.
매일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는 가난한 생활에도, 컵라면 맛이 기억 안 날 풍족한 생활에도, 한때 나처럼 라면 하나에도 겁내는 생활에도, 당신이 살아갔으면 좋겠다. 컵라면 하나가 그리도 위대한데 이를 먹는 우리는 오죽할까!
그러니 당신은 당당히 나아가라. 그러니 우리는 당당히 나아가자. 아직 우리는 타인에게 라면이 어떤 의미인지 들을 이야기가 많다.

 

고등학교부 시 장원
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신하은

그물

침대에 눕고 싶은 침대처럼
할아버지는 오늘도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어요
가끔씩 침대 밑에서 잃어버린 단어들을 찾기도 하지만요
나는 자꾸만 시큰해지는 콧잔등을 일부러 흘리거나 놓쳐요

언제부턴가 할아버지 기억의 그물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아요
할아버지는 매일 익숙한 이름들을 외우는 연습을 하고나서
눈썹을 찡그리고서는 가만히 입을 벌려요
몰래 숨어들어온 햇빛이 입속으로 들어가도 모를 만큼요
빨강 직전의 토마토처럼 할아버지는 가만히 무언가를 참았구나
발음되지 못해 아름다워지는 이름들이 씨줄과 날줄로 바쁘게 엮여요

할아버지는 매일 비행기를 타고 싶어서 밥을 느리게 먹어요
슝 하고 숟가락이 이리저리 허공을 휘저어야 입을 벌리죠
아아아 하고 시간이 꿀꺽꿀꺽 할아버지 입속으로 넘어가요
딸기를 가만히 쥐고 있는 할아버지
손가락 사이로 빨간 물이 떨어져요
이불 위로 침대 아래로 뚝뚝
할아버지가 쥐고 있는 여름은 밍밍하고 또 미지근해요

그물의 짜임은 너무 헐렁해서 하루에도 수십 톤의 기억이 빠져나가요
좋은 이웃이 되겠다며 찾아온 교회 사람들은 하루 종일 노래만 불러요
침대에 둥그렇게 모여서 따라 하기 힘든 높은 음을 버거워하면서요
병실 침대가 아니라 푹신한 구름에 기대있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보다 작아지고 싶은데
할아버지가 너무 빨리 작아져 버려요
그물은 계속 넓어지고 있지만
내가 파고들 틈은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요
아주 가끔은 문을 잠그고 화장실에 가만히 앉아있고 싶어요
내 발이 어디에도 닿지 않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처럼 눈썹을 찡그리고 가만히 입을 벌리고서
종일 물을 틀어놓고 아주 어려운 수학 문제만 풀고 싶어요
나는 느슨한 할아버지의 그물에 걸리고 싶어요
그곳에서 머리카락이 엉켜도 상관없어요 나는 가만히 앉아있을래요

 

고등부 산문 장원
인성여자고등학교 2학년 박민정

편의점

그냥 내 생각일 뿐이야, 마음속으로 혼자 하는. 그러니까 엄마, 내가 하는 생각에 미안하지 않아도 돼.
엄마, 나 이제 여기가 편해 엄마는 아프니까 초원이가 배고프면 매일 여기서 먹을 걸 사다 주거든.
알바하는 언니랑 인사도 해. 밝은 여기 앉아서 까만 바깥을 보고 있으니까 타들어 간 내 기분이 남의 얘기 같아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나 봐.
엄마, 초원이에게 어제는 라면을 먹여서 오늘은 도시락 먹여서 미안해.
사랑하는 동생이 좋아하는 바나나 우유 하나 사줄 때도 고민해서 미안해. 예쁜 그릇에 따뜻한 밥 사주고 싶은데 일회용 용기에 천 원짜리 밥 사줘서 미안해. 이런 나라서 미안해 내가 불행해서 미안해.

엄마 나는 왜 불행하지? 엄마는 왜 불행하지? 엄마의 불행은 나 때문인가. 아빠 때문인가. 아니야, 역시 나 때문이야.
나만 없었으면 그런 못된 아빠랑은 진작 헤어지고 잘 살았을 텐데.
지금 엄마의 불행은 나 때문이야. 엄마의 상처도, 엄마의 외로움도, 엄마의 공허함도 모두 나 때문이야.
그러니까 엄마 매일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지 마.

엄마, 오늘 학교에서 내 짝꿍이 잘난 척을 하니까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친구가 자기가 스스로 잘났다고 하더라.
나도 엄마한테 매일 행복하다고 하잖아. 사실 아니거든. 역시 똑똑한 애는 맞는 말만 하는 건가.
난 지금 내가 불행하다 하는데 사실 나는 불행하지 않은 건가? 엄마도 엄마가 불행하고 슬프다 했잖아. 그럼 엄마도 사실 불행하지 않은 건가? 슬프지 않은 건가? 그럼 우리의 과거는, 우리의 눈물은, 우리의 상처는, 지금 내 감정은 다 뭘까? 똑똑해도 맞는 말만 하는 건 아니네.
아니면 내가 피해망상 같은 거에 빠진 걸지도.

엄마 아프지 마. 엄마가 먹을 수 있는 약은 편의점에 없어. 초원아 배고프지 마. 네가 좋아하는 갓 지은 따뜻한 밥은 편의점에 없어.
아빠 보고 싶어. 어딜 가도 아빠가 없어.
사랑하는 엄마, 사랑하는 동생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해. 내가 불행해서 여전히 미안해.
언니, 까만 비닐봉지에 내 정성이란 행복도 같이 포장해 주세요.

 

학부모부 시 장원
인천 연수구 동춘동
주향수

영수증

산벚꽃 하얀 꽃잎 바라보는 우리는 어떤 비용도 지급하지 않은 채
스크린 가득 눈부신 장면 보듯 미소가 스치고
가슴에 들리는 노래에 젖는다

가방에 나뒹구는 하얀 영수증은 일용한 양식에 대해 비용을 청구한다
한 달을 사는 네 식구가 사용한 비용은 떨어진 벚꽃잎처럼 수북이 쌓이고
쪽쪽 빨아올린 텅 빈 컵처럼 지갑은 비어간다

너는 한 그루 벚나무처럼 커간다
우리는 네가 먹은 바람에 대해서
햇빛에 대해서 어떤 비용도 청구하지 않는다
너는 그저 우람한 나무로 자라가고
반짝이는 꽃잎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흩뿌려주면 그뿐

영수증 없이도 일용한 양식을 얻고
공짜로 꽃구경을 하는 4월

 

학부모부 산문 장원
인천시 부평구 경인로
정지우

모두가 잠든 뒤

모두가 잠든 새벽, 골목 어귀에서 ‘탁탁탁’ 플라스틱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눈살을 찌푸리고 눈을 떴다.
‘탁탁’ 소리는 몇 분 단위로 더 크게 들렸다.
웬만하면 쉽사리 잠에서 깨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날따라 그 소리가 유독 시끄럽게 들렸던 것은 운명이었을까?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면서 온갖 상상에 빠졌다.
분명 플라스틱 재질의 물건이 부딪치는 소리였지만, 혹여 범죄자들이 취객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살인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면 어떡하나 하는 불길한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패딩 점퍼를 입었지만, 한겨울의 칼바람을 막아내기에는 한참 부족한 차림이었다.
소리의 본거지를 찾아내면 반드시 해결은 하고 와야지 하는 당찬 포부도 잠시 불길한 상상 덕분에 몸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집 밖을 나와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서 드디어 그 시끄러운 소리의 원인을 찾아냈다.
“탁탁탁!”
한겨울의 한기 때문에 꽁꽁 얼어버린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들어있는 꽁꽁 얼어 잘 떨어지지 않는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통에 담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것 같았다.
‘휙’ 칼바람이 불어왔다. 점퍼 지퍼를 추켜올리며 아저씨를 쳐다보다 그대로 얼어버렸다.

아버지였다. 왈칵 눈물부터 쏟아졌다. 아버지는 육십 평생을 건설 노동자 일을 하셨다.
혈기 왕성한 젊음을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일에 사용한 바람에 이른 나이에 벌써 오른쪽 청각이 약해지셔서 보청기를 끼시고 관절의 움직임 또한 원활하지 않아서 앉고 일어서는 것이 불편해지셨다.
이제 더 이상 건설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은 아버지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이제 늙고 병들어 나약하게 집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었을까? 그 차디찬 칼바람을 맞으며 쓰레기를 치우는 아버지의 모습이 까만 점처럼 아득하게 보였다.
“아빠!”
너무 경솔한 선택이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한달음에 아버지께 다가갔다. 흠칫 놀라는 눈치였지만 아버지는 당당했다.
“이 늦은 시간에 잠 안 자고 왜 나왔어?”
아버지의 당당함에 피식 웃음이 났다.
“아빠가 하도 시끄럽게 굴어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죠.”
아버지도 피식 웃으시고는 점퍼에 붙은 모자를 씌워주셨다.

아버지의 평생 목표는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떠돌이 생활을 하며 건설현장의 차디찬 바닥에서 잠을 자고 했던 세월이 아버지에게 안겨준 희망이고 간절한 소원이었다.
내가 아버지의 그 간절함에 보탬을 드린 딸이었는지는 아버지께 묻고 싶지만, 자신은 없다.
다만 앞으로는 그런 가정, 그런 참 좋은 딸이었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 하나 마음에 새긴다.
“감기 걸릴라, 어서 들어가!”
오매불망 자식 걱정이신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아빠! 나도 도와줄게요.”
마지막 남은 음식물 쓰레기통을 어설프게 집어 들고 아버지를 돕겠다고 설레발을 쳤다.
한사코 말리시는 아버지였지만, 나의 고집을 꺾지는 못하셨다.
‘탁탁탁’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음식물을 억지로 떼어내느라 까만 새벽의 정적을 화들짝 깨워놓았다.
모두가 잠든 뒤 우리 부녀의 우연한 만남은 까만 밤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