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2023년) 새얼 백일장 장원작품

  • 날짜
    2023-10-24 10:16:09
  • 조회수
    5378

2023년도 새얼백일장 장원 수상작품

 

 

초등1·2학년부 시 장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

- 핵왕폭탄 펀치

 

 

김주훈(인천길주초등학교 1학년)

 

티비 봐라

놀아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

 

구몬, 독해, 수학,

영어, 태권도, 받아쓰기

내가 해야 하는 산더미들

 

그러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을

듣기 위해

핵왕폭탄 펀치로

산더미 뿌셔!

 

 

 

초등1·2학년부 산문 장원

 

인사

 

 

박다온(인천송명초등학교 1학년)

 

학교에 가는데 친구를 만났다. 가끔 친구들은 나한테 인사를 안 한다. 그래서 내가 인사를 먼저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여전히 인사를 안 한다. 그래도 난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친구들을 따라서 교실로 들어가 인사를 하였다. 그제야 친구들은 내 말을 받아 주었다. 그 후로 나는 친구들이 인사말을 잘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그다음 날 또 시작이었다. 안녕!”이라고 했다. 또 친구들은 내 말을 받아 주지 않았다. 그 후로도 인사를 안 해서 속상했다. 그런데 난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계속 계속 안녕!”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 반복의 기적이 일어났다. 친구들이 나한테 인사를 하기 시작해서 이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초등3·4학년부 시 장원

 

초능력

 

 

신유림(인천숭의초등학교 3학년)

 

나는 집에 와서

물을 마시려고 했는데

내 손에서 물이 나왔다

 

초능력 얻은 걸 안 나는

나쁜 아이를 잡아 혼내 주는

영웅이 되었다

 

! 비명 소리가 났다

도둑을 밧줄로 잡아서

혼내 주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데

길고양이를 봤다 불쌍해서

밥과 물을 만들어 주었는데

고양이가 내 초능력을 가지고

도망가 버렸다

 

하지만 화나지 않았다

난 이미 영웅이니까

 

 

 

초등3·4학년부 산문 장원

 

초능력

 

강솔(인천석정초등학교 4학년)

 

우리 집에는 초능력자가 살고 있다. 멀리 있는 물건을 금세 가져오는 마법을 쓴다거나 변신하는 신비한 능력은 아니다. 내가 벗어 놓은 옷, 가방, 포장하다 만 포토카드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는 내 방의 물건들이 소리 없이 제자리에 척척 들어가 있고, 내가 배고플 때마다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간식들, 밤에 자다가 물려 생긴 모기 자국이 아침에 일어나면 더 이상 가렵지 않게 되는 나의 일상에 소소한 도움을 주는 초능력자,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엄마이다.

사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엄마의 가장 멋지고 대단한 초능력은 바로 마음 읽기 능력이다. 내가 학교에서 친구와 싸워서 기분이 안 좋을 때, 수학 시간에 본 단원 평가에서 실수를 해 속상할 때,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학원 가기 싫을 때조차 내가 말하기 전에, 아니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단숨에 나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신다. 마치 내 머릿속, 마음속을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빨리 알아채셔서 가끔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들을 숨기고 싶을 때에는 엄마를 피해 방 안에 꽁꽁 숨기도 한다.

그런 엄마의 약간은 무서운 이 초능력 덕분에 요즘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워졌다. 사실 코로나 이후로 맨얼굴로 등교를 한 적이 없던 나는 올해 4학년이 되고 하나둘씩 마스크를 벗고 오는 친구들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고집하고 쓰고 다녔다. 그런 내게 엄마는 아침마다 넌 답답하지도 않니? 이제 마스크를 벗어도 괜찮대도.”라며 잔소리를 하셨다. 감기에 걸려 그러신지 며칠째 엄마는 초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아침마다 마스크를 챙기는 이유는 바로 뾰루지때문인데……. “학교에 감기 걸린 친구들이 많단 말이에요!” 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와 버렸다. 가뜩이나 장난기 많은 우리 반 남자애들이 못생겨서 쓰는 거라며 놀려 대는 탓에 짜증이 나는데, 엄마까지 몰라 주니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초능력자 우리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다음 날, 등교 준비를 마치고 마스크를 챙기려는데 엄마가 마스크 대신 예쁜 페이스 스티커를 뾰루지 위에 붙여 주셨다. “우리 딸! 너무 예쁘네……. 꼭 아이돌 같네.” 거울을 보니 뾰루지는 온데 간데 보이지 않고 예쁜 하트 모양 스티커가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 엄마의 초능력이 드디어 되돌아온 모양이다. 뾰루지가 해결된 나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에 갔다. 너도나도 스티커를 붙이며 나를 따라했다. 어깨가 으쓱해지고 진짜 내가 아이돌이 된 기분마저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엄마와 함께 다음 날 붙이고 갈 스티커를 고르면서 아침에 있었던 일을 사과했다.

엄마, 소리 질러서 죄송해요.”

아냐, 엄마가 솔이의 마음을 몰라 줘서 미안해…….”

우리 엄마는 정말 대단한 마음 읽기 초능력자다. 가끔 몸이 아프거나 힘드실 때에는 쓰시지 못하는 것도 이제는 안다. 이런 멋진 능력을 날 위해 써 주시는 엄마가 있어 난 정말 행복하다. 이 능력이 유전이 되어 훗날 내가 어른이 되면 엄마만을 위한 마음 읽기 초능력자가 되어 주고 싶다.

 

 

 

초등5·6학년부 시 장원

 

귓속말

 

 

이서이(인천석암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이 속닥속닥

나는 궁금해진다

 

무슨 말 해?”

아니야.”

 

다음 날 또 속닥속닥

 

혹시 내 얘기 해?”

……. 아니거든!”

 

1018일 학교 게시판에는

○○○ 실체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와 있다

좋지만은 않은 이야기

눈물이 또르륵하고 흐르는 이야기

 

모두 다 거짓말인데…….’

 

댓글 창을 열면 나에 대한 화살이 날아온다

하고

 

나는 맞서 싸울 수 없다

나는 나무 방패고, 그들은 날카로운 쇠검이었다

그렇게 는 조각상이 되었다

툭탁망치 소리는 나를 더 깎아 내리고 조각했다

 

, ‘라는 존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단지 귓속말 때문에

 

 

 

초등5·6학년부 산문 장원

 

짜증

 

백채아(인천송명초등학교 5학년)

 

신발이 삐뚤어져 있다. 오늘도 속상한 일이 있었나 보다. 신발은 내가 나가면 나가기 싫은데도 억지로 나가야 한다. 맨몸으로 질퍽한 거리를 배처럼 진흙탕에도 뛰어들어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신발을 닦아 주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신발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주인! 주인? 나 안 닦아 줘? 나 더러워졌다고!”

그럴 때마다 난 무시하며 말한다.

뭐라고? 이따 닦아 줄게, 나 지금 씻어야 해.”

이제 다시 생각하면 신발이 왜 삐뚤어져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명령하면 무조건 복종하는 신발, 온몸을 던져 날 보호하는 신발, 참 슬플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내가 2학년 때였다. 나는 오늘 계곡에 갈 생각에 매우 들떠 있었다. 그러나 내 신발이 또 삐뚤어질 만한 일이 생겼다. 그때는 슬리퍼를 신고 있을 때였다. 내가 친척과 장난치다가 슬리퍼를 계곡에 빠뜨리고 말았다. 난 그대로 슬리퍼와 작별 인사를 하게 되었다. 슬리퍼가 참 불쌍했다. 계곡에 빠진 슬리퍼가 허우적거렸다. 나도 어떤 일에 빠져 허우적거린 적이 있다. 바로 가족 관계이다. 난 요즘 가족 관계에 잘 적응되지 않는다. 그럴수록 난 가족과 잘 싸우게 되고 점차 신발과 같이 삐뚤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삐뚤어지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주변 친구들도 그렇다. 내 반 친구 중 뭐만 하면 욕하는 친구가 있다. 심지어 그 친구는 선생님께 저항을 하거나 외모를 비하해 놀리기도 한다. 나는 그 친구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삐뚤어지고 싶어도 남에겐 해를 끼치면 안 된다. 요즘 신문 기사나 뉴스를 보면 사건사고가 많이 보도된다. 내가 보기에도 너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왜 조금만 건드려도 예민해지는 것일까? 서로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언니와 싸울 때가 있다. 그것은 한 신발은 오른쪽, 또 다른 신발은 왼쪽으로 놓은 것과 같다. 언니가 나에게 짜증을 낼 때가 있다. 난 그때마다 오른쪽 신발이 휙 날아가는 걸 느낀다. 난 언니와 싸울 때마다 신발을 가지런히 놓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니는 지금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난 앞으로도 언니의 짜증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

가끔 현관에는 여덟 개의 짜증이 있다. 엄마는 왜 짜증이 났을까? 아빠는 왜 짜증이 났을까? 언니는 왜 짜증이 났을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신발이 가지런히 같은 방향을 보기도 한다. 이 순간이 참 소중하다. 나는 신발들을 보며 생각했다. 신발도 자신이 가고 싶지 않은 길이 있었을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가끔 신발의 짜증을 잘 들어 주어야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짜증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짜증은 내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난 이제부터 다른 사람이 나를 짜증나게 해도 절대 짜증내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 몸에서 짜증이라는 단어가 나올지라도 난 그 단어에게 레드카드를 주어 퇴장시킬 것이다.

 

 

 

중학교부 시 장원

 

노래

 

 

유가연(인천원당중학교 3학년)

 

노래를 했으면 한다

 

예쁘진 않아도 힘차게

섬세하진 않아도 확실하게

저 멀리 파도까지 들리도록

노래를 했으면 한다

 

고래는 노래하지 않고 말할 수 없다

너도 고래가 되어

바다의 가장 새파란 곳에서

 

심해보다 어둡고

비늘보다 빛나는

 

그런 노래를 했으면 한다

 

깊이 듣고 싶다

 

네가 하는 말을, 네가 하는 노래를

저 멀리 고래의 파동처럼 깊게

파랗게 듣고 싶다

 

32비트의 반주 위에서

네가 4비트로 노래한다 해도

똑같은 비트로 공명하는

0비트의 메트로놈 같은 바다를

그 바다가 물결치는 심장을

 

나는 갖고 싶다

그렇게 듣고 싶다

 

그래서 네가 언제든 듣고 부를 수 있는 그런 바다의, 그런 철의 따개비 되어

 

네게 녹슬고 싶다

 

 

 

중학교부 산문 장원

 

차이

 

백가은(인천제물포여자중학교 3학년)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나는 늘 우리 엄마를 부끄러워했었다. 나는 왜 우리 엄마를 부끄러워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별거 아닌 이유였다. 우리 엄마는 서른여덟,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타지인 한국에서 나를 낳았다. 엄마는 몽골 국적에서 한국 국적으로 귀화한 그런 한국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국 국적으로 귀화했어도 학교에서 운영하는 다문화 프로그램에는 참여할 수 있었다. 나와 엄마는 2주에 한 번 열리는 그 프로그램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번 참석했다. 그러던 중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물어 왔다.

, 너희 엄마 외국 사람이라며?”

나는 그 질문이 사실이었기에 맞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입가에 한껏 비웃음을 머금으며, “어디? 베트남? 필리핀? 동남아에서 왔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베트남도, 필리핀도, 동남아 사람도 아니었기에 나는 큰 목소리로 우리 엄마는 몽골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이번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몽골? 거기가 어딘데? 보나마나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겠지 뭐.”라고 대답했다.

나는 당시 못사는 나라라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 친구가 우리 엄마를 욕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곧장 그 친구에게 화를 냈지만 그 아이에게 내 사사로운 감정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얼마 후, 그 아이는 어찌나 말이 많던지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 엄마가 몽골 사람이라는 것을 2학년 모두가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아이가 얘기한 못 사는 나라라는 말이 며칠간 마음에 걸려서 한동안은 엄마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 이후, 나는 마치 우리 엄마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엄마는 늘 나를 사랑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매일 뽀뽀를 해 주는데도 나는 엄마가 어딘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우리 엄마는 여전히 나의 엄마니까. 별 시답잖은 친구들의 말 같은 건 그냥 모르는 체 했다.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끝난 일인 줄 알았다. 내가 다시 차이를 느끼게 된 건 5학년 때의 일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원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가은이 어머니가 외국 사람이시라며? 어느 나라 분이셔?”

그 순간 심장이 하늘에서 바닥까지 쿵 하고 떨어졌다. 그 누구도 알아선 안 되는 비밀을 들킨 기분이었다. 내가 어떻게 대답할지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내놓은 대답은 모르겠어요.”였다. 나는 엄마의 국적을 알았지만 몰랐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엄마를 향한, 그리고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엄마, 그리고 내가 부끄러웠다. 그렇기에 나는 엄마의 국적을, 그리고 엄마를 부끄러워하는 나의 모습을 철저히 숨겼다.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친구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는 것도 다 그만뒀다. 나에게 엄마는 우리 집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나와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가 우리 집에 오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지금 집에 있을 우리 엄마를 숨기기 위해 절대 안 된다고 대답했으나 그 친구의 의지는 완강했고, 결국 친구를 우리 집에 초대했다. 나는 그 친구와 방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문 밖에서 섬뜩한 아니 어쩌면 나만이 싫어하는 우리 엄마의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엄마는 고향 친구들과 전화를 자주 했기에 이번 전화도 고향 친구들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통화 소리가 친구에게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큰 소리로, 최대 음량으로 노래를 틀었다. 대략 20분 후 엄마의 통화 소리가 멎자마자 나는 친구를 서둘러 집으로 돌려보냈다.

친구를 돌려보낸 후 방 안에 나 혼자만이 남았을 때,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엄마에 대한 미안함, 후회, 분노, 안도감 등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렇기에 나는 그 좁은 방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엄마가 영원히 이 사실을 몰랐으면 했다. 그렇게 몇 년 후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1학년 2. 나는 거기서 평생 잊지 못할 한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으면서 달랐다. 나와 같은 다문화 가정이지만 나처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았다. 그 친구는 내가 느낀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또 질투의 대상이었다. 나는 나와 별 차이 없으면서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그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나는 여전히 모든 것을 숨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또 우리 엄마에 대한 거짓말을 친구들에게 해 버렸고, 또다시 자괴감에 사로잡혔다. 바로 그때 그 친구가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말을 걸어왔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나는 참다못해 결국 모든 사실을 그 친구에게 털어놓았고 내 말을 들은 친구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내가 괜한 얘기를 했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그 친구가 입을 열었다.

근데, 그게 그렇게 부끄럽나? 다들 조그마한 차이 하나씩은 존재하잖아. 모두가 다른 건 당연한 거 아냐?”

그 친구의 대답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찾아 헤맸던, 가장 듣고 싶었던 해답이 여기 그 친구의 입을 통해 나왔다. 친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너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당연한 차이를 가지고 욕하는 그 사람들이 잘못된 거지. 네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나는 그 순간 시간이 멈추는 것 같다는 말뜻을 깨닫게 되었다. 거대한 빛 하나가 내게로 오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또 이틀이 지나가고 총 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나는 이제 엄마를, 그리고 엄마의 국적을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점차 사그라들게 되었다. 나는 얼마 전 여름 방학에 몽골에 다녀왔다. 가끔 어떤 친구들은 왜 가족 여행을 몽골로 다녀왔냐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우리 엄마 고향이라서! 외가 식구들 보러 다녀왔어.”라고 대답한다.

나는 아직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다 잊진 못했지만 예전과 같은 느낌의 부끄러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또한 이제 나는 차이를 이해한다. 어제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 쉬는 시간에 친구와 대화하는 도중 친구가 내 눈이 유독 밝다는 소리를 했다. 그땐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집에 도착해 엄마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나는 깨닫고 말았다. 우리 엄마의 눈동자도 밝은 갈색이라는 사실을. 내 밝은 눈동자는 우리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임을. 이것이 나와 엄마의 같음이고 다른 사람들과 우리의 차이이다. 하지만 부끄럽거나 숨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된 나는 그만 싱긋 웃어 버리고 말았다. 내 미소를 발견한 엄마가 나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며 눈짓을 해 왔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다며 방금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엄마도 나와 함께 누구보다 빛나는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고등학교부 시부 장원

 

질문

 

신로아(고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하나둘 엎드려 잠을 자는 문학 시간

나는 창문 너머 영동빌라 옥상을 바라본다

 

느리게 시를 읽는 선생님의 박자에

전깃줄에 걸린 빨래도 천천히 말라 가고

나도 점점 눈이 감겨 가는데

하나님, 보시니 마땅합니까?

선생님의 질문에 깜짝 놀라

이 교실에 하나님이 어디 있나 찾고 있었는데

다음 행을 읽기 시작하는 선생님

 

한낮이 지나갈 때마다 빨래가 마른다

여름 방학이 끝난 지도 한참,

한낮은 어제도 지나갔지만

교실에는 마르지 않은 교복만 있다

축축한 교복에 뿌리 내린 것들이

엎드려 잠을 잘 때마다 자라고 있다

 

짝꿍의 구겨진 교복 사이로, 아픈 동생이

반장의 빳빳한 목깃 사이로, 구겨진 문제집이

친구의 치마 사이로

첫사랑이

 

사춘기의 뜻이

봄을 생각하는 시기라는데

우리들의 꽃에는

상처도 함께 맺힐 것이다

 

보시기에 마땅한 아이들일까요?

마땅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데

빨래가 다 말랐다

집주인이 열매 따듯 바구니에 빨래를 담아 갔고

이제는 우리가 마를 차례다

 

선생님의 느린 박자에 맞춰

서서히 흔들리는 교실에서

하나님,

우리들의 꽃에 맺힐 상처도

열매 되길 기도드리는 영동빌라 옥상

마땅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보고 싶어지는 날들

 

 

 

고등학교부 산문부 장원

 

질문

 

이소흔(인천여자고등학교 2학년)

 

모든 것에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어떤 의견에 대해 잠시 멈춰 생각해 봐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2023926, 임금 체불에 대해 시위하던 택시 노동자는 자신의 회사 앞에서 분신을 하였다. 택시 기사는 회사에게 최저임금 보장과 근로시간 보장을 주장하며 지켜지지 않는 인권에 대해 저항하는 노동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는 노동자가 시위를 하며 회사와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지속적인 압박을 하였고, 이로 인해 택시 기사는 분신을 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란 무엇일까? ‘당연함이란 무엇일까? 등굣길에 버스 기사님들을 마주할 때, 학교에서 청소 노동자분을 마주할 때마다 나에게 묻는 질문이다.

이런 나에게 사회적 분위기를 알게 해 주는 기회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학교 화장실에 적힌 문구를 보고 놀랐다. 화장실에는 당신의 가족이 청소한다 해도 이렇게 사용하실 겁니까?”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깨끗한 화장실의 모습을 기대했다.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건 당연한것이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쓰레기가 바닥에 엉망진창으로 더렵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난 여기서 당연한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당연한 것을 하지 못하는 거지?” 그때부터, 나의 주변에 있는 사회를 바라보게 되었다. 학교 근처에 있는 대형 마트에서 키오스크로 인한 노동력 절감을 반대하는 현수막과 가끔 가다 지나치는 택배 기사분을 보면서 떠오르는 기본적인 휴게 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는 택배 기업과 뉴스에서 나오던 알 수 없는 노동자의 죽음이 이제 보이게 되었다. 알 수 없을 것 같던 죽음에는 권리라는 질문이 따라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인권에 대해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초등학생 때부터 교육을 받는다. 정말 인권은 필요할까? 그런데 왜 지켜지지 않는 사회가 보이는 걸까? 지하철에서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시위를 하던 장애인들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 이유는 시위로 인해 열차가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하여 대다수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것이었다. 모두는 말한다. “시위를 조용히 한다면 괜찮다.”라고 말이다. 이 상황이 노동 문제와 나란히 볼 수 있는 이유는 기본권이 지켜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시위를 공격적으로 나타내는 언론과 누군가의 권리 보장을 혐오적인 분위기로 만드는 우리들에게 이제는 이해와 타협이 필요하다. 그리고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용기가 필요하다.

공원에서 자신의 친구를 외노자(외국인노동자)라고 비하적 발언을 했던 어린아이에게 용기가 없어 말을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해야겠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색안경을 쓰는 것처럼 검정색 안경을 썼다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여러 가지 목소리가 섞여 있는 무지개 색처럼 사회를 다방면으로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무지개 안경을 쓰기 위해 오늘도 질문을 찾으러 나선다.

 

 

 

일반부 시부 장원

 

유통기한

 

유철헌(인천광역시 연수구 먼우금로)

 

 

뚜벅뚜벅

편의점에 야간 알바를 하러 가는

지원금 없이는 걸어갈 수 없는 나

 

주섬주섬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 음식들을

소중히 모아 가방에 담는다

누구에게는 때가 지나

버려야 할 것이지만

누구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기에

 

나는 유통기한의 존재가 고맙다

 

나의 삶도 앞이 보이지 않아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 버린 듯해도

어딘가에는 꼭 필요할 것이기에

언젠가에는 꼭 피어날 것이기에

오늘도 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뜯으며

내일을 그린다

 

 

 

일반부 산문부 장원

 

유통기한

 

김미성(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

 

신선한 재료로 가족들을 위한 밥상을 차릴 요량으로 장을 본다. 감자, 콩나물, 당근, 양파, 상추, 부추 등 해 주고 싶은 요리들이 많아서 양껏 장을 봤다. 재료를 가지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도 끓이고 반찬도 만든다. 또 해 먹을 생각을 하고, 바쁜 일상을 꾸리다가 며칠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버린 줄도 모르고, 냉장고만 믿었다. 하지만 채소들은 그사이 숨이 죽었고 짓물러서 생기를 잃고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냉장고가 만능이 아닌데, 나는 냉장고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인생에도 냉장고가 있다고 생각하며 삶을 살았던 때가 있다. 잠시 보관해 두기 위한 곳인데, 그 기간을 내가 원하는 만큼 최대한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 착각을 한다. 내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각하지 못했다. 그때는 나의 이십 대 초반 시절이었다. 알 수 없는 무기력함으로 하루하루 하릴없이 빈둥거렸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때 이후로 대략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나간 세월의 유통기한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여자로서의 내 인생 유통기한은 너무 짧은 것 같아서, 가끔씩은 회한에 사무친다.

엄마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꼬물거리는 자식 둘을 키우고 나니, 이제 여자가 아닌 엄마로서의 유통기한이 개시되었다. 엄마로서 시작된 유통기한은 내 삶의 유통기한이 끝날 때까지는 도대체가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이대로 여자로서의 유통기한을 포기하려니 억울해서 안 되겠다.

방법이 없을까? 여자로서의 유통기한은 이대로 끝난 것일까? 정수리에서는 감출 수 없는 새치가 희끗희끗 잔디처럼 솟아오르고, 기분이 좋아 웃을 때에는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탱탱했던 살결은 탄력과 빛을 잃어 간다. 젊음의 상징이 곧 여자의 유통기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도, 여자로서의 유통기한을 평가하는 요소는 참으로 가혹하다.

그럼 여자로서, 마흔에 접어든 여자의 삶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을 세워 보기로 한다. 세상이 바라보는 여자의 유통기한이 아니라, 엄마이자 중년 여성이 보여 줄 수 있는 반짝거리면서 영롱한 빛을 찾아 그 여정을 떠나 보기로 했다.

세상이 정한 여자의 유통기한이 아니라, 나만의 레시피로 유통기한을 늘려 보기로 했다. 생기를 더하고, 당장이라도 그 효용을 다하는 상품 가치가 높고, 애초에 유통기한이 없어서 가치를 발하는 여자로서의 최장의 유통기한을 찾아간다.

그 시작은 삶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것부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유통기한을 처절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한번 뚜껑이 열리면, 그날 모두 소진해야 하는 하루라는 유통기한. 그래서 나는 오늘을 낭떠러지를 앞에 둔 사람처럼 살아 보기로 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나의 젊음을 먼저 깨운다. 내 안의 여성성을 마음껏 깨운다. 모두가 잠들어서 고요한 그 시간에 나의 여성성을 마음껏 발휘한다. 고독 속에서 책을 읽고,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나의 머리로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주어진 그 하루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타자를 친다.

나의 글에는 유통기한이 없고, 내가 쓴 글은 또한 유통기한이 없다. 그 글 속에서 여성이자, 엄마로서의 유통기한도 그 의미를 잃게 되는 순간을 만끽한다.

나의 여성성을 회복하면서 삶은 생기를 되찾았다.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야 하기에 한 번 더 남편과 아이들에게 나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안아 주고, 눈 맞추고, 뽀뽀한다. 오늘의 입맞춤이 어제의 입맞춤과 같지 않을 것이기에 한 번 한 번이 의미가 남다르다.

어제를 그리워하기를 멈추고,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모습 그대로가 내가 가진 최상의 유통기한이다. 지금 바로 이 공간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야지 오히려 삶의 유통기한이 늘어난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의 모든 것에 나의 혼과 에너지, 열정을 담아 본다. 세상에 내어 놓을 그럴듯한 예술 작품 하나 없는 일개 두 자녀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지만,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나의 혼을 적어 내려갈 때 세포가 역동한다.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고 유통기한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서 눈매는 더욱 예리해진다. 영롱함으로 반짝인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하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나에게 세상을 보여 주는 당신을 향해 몸을 세우고, 가슴을 활짝 편다. 세상을 가슴에 담아야 글이 써지기에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여성으로서의 유통기한이 연장되고 있다. 삶이 나에게 내려 준 비밀들을 알아 가느라, 하루가 짧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인생 유통기한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 내 삶의 유통기한, 엄마이자 여자로서의 유통기한은 내가 정하는 것이었다. 세상이 정해 준 것도 아니고, 자연이 신이 정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당신의 혼을 담아 낼 당신만의 도구가 있다면 당신의 유통기한은 무기한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 당장 그 도구를 찾아보자. 나에게 그 도구는 글이다. 나의 정신이 글로 표현되면서 유통기한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그러니 어찌 내 삶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도 글을 쓰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