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1·2학년부 시 부문 장원
경인교육대학교부설초등학교(인천) 1학년 김지아
공룡이 살아있다면
공룡이 쿵쾅쿵쾅
나는 폴짝폴짝
공룡이 입을 크게 벌렸다
나를 잡아먹으려나?
나도 입을 크게 벌렸다
무섭지?
공룡이 덜덜덜
침을 흘린다
아!
내 빵이 먹고 싶었구나!
초등1·2학년부 산문 부문 장원
논곡초등학교(인천) 2학년 이정미
공룡이 살아있다면
공룡이 살아있다면 나는 작은 공룡을 애완동물로 키우고 싶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우리집 마스코트 앵무새 꼬꼬는 아마도 익룡이 아니었을까? 그럼 꼬꼬와의 산책은 높고 푸른 하늘로.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난다. 비행기 대신 익룡을 타고 할머니 댁에 가서 트리케라톱스가 갈고 있는 밭일도 같이 도와드리고 저녁에는 가족과 다 함께 맛있는 공룡고기 파티를 한다면, 모두가 배부를 것 같다. 학교에서는 공룡과 함께 잘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을까?
나는 공룡을 좋아해서 공룡 시험 백 점은 자신 있다. 브라키오사우루스처럼 목이 긴 공룡은 소방사다리차 대신 불을 끄거나 사람을 구조하는 공룡소방관으로 불리겠지. 그리고 요즘 공기오염이 너무 심각한데 공룡이 살아있다면 매연 많은 자동차 대신 매연 없는 빠른 공룡택시를 타고 마트에 다닌다면 지구도 덜 아프고 지구에 사는 우리 인간도 비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 텐데, 공룡 똥도 인도에서 종이로 만들어 쓰는 코끼리 똥처럼 종이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무도 기뻐할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자주 가던 공룡박물관은 사라질 거야. 참 속상한 일이다. 내 동생도 공룡박물관은 참 좋아하는데. 그래도 꼬꼬랑 하늘도 날 수 있고 매연도 줄일 수 있는 공룡과 함께 사는 세상.
나는 살아보고 싶다.
초등3·4학년부 시 부문 장원
그레이스아카데미(인천) 4학년 엄지은
빨리빨리
학교 끝나고,
골목길에
고양이가 야옹야옹
나는 빨리빨리 걸어가
쓰담 쓰담 고양이가 가르릉 가르릉
나는 집으로 가기 전 안녕 안녕
다음날 난 빨리빨리 골목길로
하지만 고양이는 이미 사라진 후
초등3․4학년부 산문 부문 장원
가현초등학교(인천) 4학년 박서진
빨리빨리
난 빨리빨리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빨리빨리 움직여야 더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친척 집에 갈 때나 놀이공원에 갈 때나 빨리빨리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어디를 놀러 가면 나는 항상 생각했다. ‘이번에도 빨리빨리 움직여서 많은 추억을 만들어야지!’
그러던 어느 날, 주말에 시간이 생겨 놀이공원을 가게 되었다. ‘꼭 빨리빨리 움직일 거야!’ 난 다짐했다. “모든 것을 빨리빨리!” 롤러코스터, 바이킹, 플룸라이드 할 것 없이 재빨리 줄을 섰다. 밥도 빠르게 먹고 다시 줄을 설 준비를 했다. 후다다닥 빠르게 오고가며 많은 놀이기구를 탔다. 나는 더 많은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으, 하하하 오늘도 빠르게 움직여서 놀이기구를 열 개나 탔군. 아주 만족스러워. 역시 빨리빨리가 최고야! 하하하”
난 놀이기구를 열 개나 탔지만 맨날 여운이 남는다. ‘아……, 아쉽다. 조금만 더 빠르게 움직였으면 열다섯 개, 스무 개까지도 탈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대로 놀이기구 한 개만 더 타고 왔다. 놀이기구 하나 더 탔다고 아쉬움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하나라도 더 탄 게 어디야’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난 빨리빨리 움직이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뿌듯했다. 놀이공원을 나와 집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은 후 엄마가 사과를 깎아주시며 말했다.
“놀이공원 다녀온 일 재밌었니?” 나는 무엇이 재미있었는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빨리빨리, 빨리빨리, 빨리빨리’ 내 머릿속에는 온통 빨리빨리 뿐이었다. “으, 응” 나는 일단 재밌었다고 대답하긴 했다.
하지만 정작 놀이공원에 있을 때는 재미있다고 느껴보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너무 빨리빨리 하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았다. 놀이기구를 열한 개나 타긴 했지만 좋은 추억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내가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즐겁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맞아! 좋은 추억은 빨리빨리가 아닌 내가 행복했던, 기뻤던, 즐거웠던 나의 느낌을 남기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 후로 난 빨리빨리보다는 나의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로 좋은 추억이 많이 생겼다. 그때의 깨달음이 나에게 이런 추억들을 준 것이었다.
초등5·6학년부 시 부문 장원
청람초등학교(인천) 6학년 김시현
오해
난 아직도 나를 몰라서 알아가는 데
너는 벌써 나를 다 아나 봐
나는 덥고 쨍한 하늘을 보며 일어나는 게 좋은데,
너는 내가 소복하게 쌓여 있는 눈을 보며 일어나는 걸 좋다고 생각하나 봐
그렇게 나를 오해하고 있더라
나는 시끄럽게 뛰어놀며 운동하는 체육이 좋은데,
너는 내가 조용하게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미술이 좋다고 생각하나 봐
그렇게 나를 오해하고 있더라
나는 혼자 있는 것보다 너랑 있는 게 좋은데,
너는 내가 너랑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나 봐
그렇게 나를 오해하고 있더라
네가 널 오해하는 만큼 나도 널 오해하고 있겠지
언제일진 모르지만
몽실몽실하게 피어버린 오해라는 먹구름은
작은 수증기가 되어 날아갈 거야
초등5·6학년부 산문 부문 장원
영종초등학교 금산분교(인천) 6학년 이연우
문득
우리 엄마 아빠는 따로 산다. 저번에 아빠가 음주 운전을 해서 엄마가 아빠를 신고했다. 그 일로 엄마, 아빠는 몇 주 동안 크게 싸웠다. 나는 그 사이에서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내 생각은 ‘재잘대며 엄마와 이야기하던 편한 집’에서 ‘조용하지만 각자 마음의 소리로 시끄러운 불편한 집’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이대로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면 어떡하지?’ 아빠에게는 미안하지만, 둘이 헤어져 버린다면 차라리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돌아다니자 머리뿐만 아니라 온몸이 뒤죽박죽 엉켜 버린 것 같았다.
정말로 괜찮을 것 같았다. 엄마가 아빠랑 떨어져 산다고 했을 때도 괜찮았다. 어차피 나랑 잘 놀아주지도 않는 아빠였기에, 아빠가 나가기 바로 전날 밤에도 별 생각이 안 들었다. 내가 나쁘다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가 짐을 들고 문밖으로 발을 옮길 때 내가 기절한 줄 알았다. 그리고 ‘문득’ 눈을 떠보니 나는 내 방에 앉아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서 울었다. 아빠가 나간 지 오 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보고 싶었다. 나 자신이 도대체 왜 그딴 짓을 했는지 바보 같아서 울었다.
보통 주말에는 아빠를 만나러 서울에 간다. 아빠는 만날 때마다 나에게 무언가를 사준다. 나는 엄마와 여행도 갔다. 아빠가 없어도 그런대로 잘 살고 있다. 둘이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데 뭐 어쩔 수 없겠지. 문득 깨달았다. 나한테 딱 들어맞는, 우리 가족에게 딱 들어맞는 그런 방법은 없다. 조금 불편해도 ‘우리의 방식’대로 잘 살면 된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문득’ 여러 번 떠올리게 된다면, 더 많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학생이 문득 하지 않았던 숙제를 떠올려 해 가면 선생님께 혼나지 않는 것처럼 ‘문득’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중등부 시 부문 장원
서창중학교(인천) 3학년 이한솔
고백
쿵쿵거리던 선풍기 바람에 차갑게 식은 양말
어느새 냄새가 날아가버린 라면
땀에 젖어 축축한 윗옷
그 뒤엔 열기가 가득 남아있던 신발
바깥에 찌들어 코를 누르게 했던 너덜한 외투
나만한 눈썹
낡은 액자 속 말없이 담겨 있는 사람
여린 참새 같았던 나의 눈이
깨달았다
말 없는 고백이다
중등부 산문 부문 장원
구월여자중학교(인천) 3학년 최휘연
국어시간
우리 집은 작은 학교다. 바로 다섯 살 난 어린 남동생을 위한 개인 학원인 것이다.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건 유일한 한 학생에 의해 아무렇게나 결정된다. 오늘은 영어, 오늘은 수학. 심지어 언제는 결석이다. 이런 막무가내인 우리 집 막내는 머리가 좋다. 말을 늦게 시작한 것에 비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정도의 수준에서 이젠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다. 자기의 이름을 삐뚤빼뚤 쓰던 학생은 숫자를 백까지 쓰고, 수많은 나라의 이름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말을 너무 잘해서 짜증나기도 하지만 작은 손으로 큰 연필을 쥐고 스케치북에 얼굴을 박은 채로 꾹꾹 글씨를 쓰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고 귀여워서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이 조그만 학생이 이렇게 자라게 된 것은 선생님들의 영향이 크다. 학생의 태도도 중요하지만, 이를 가르치고 옳은 길로 인도하는 선생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선생님들도 학교 체제와 같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가장 좋은 선생님은 우리 엄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엄마는 최고의 유아국어선생님이 아닐까 싶다. 학교 국어시간에는 글을 읽고 쓰는 수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듣고 말하는 수업이 우리의 생활에서 굉장히 중요한 수업이다. 나도 동생에게 ‘고마워’나 ‘누나. 안녕. 왔어?’ 등의 인사를 가르친다. 그뿐만 아니라 아빠도 존댓말 수업을 진행할 때가 있다. 그러나 엄마의 말하기 수업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엄마가 유아교육과 출신에 실제 어린이집 교사라 그런 건진 몰라도 엄마의 가르침을 들으면 나도 학생의 입장에서 고무되곤 한다. 주로 동생이 말을 안 듣거나 버릇없이 행동할 때, 누군가를 때리거나 물건을 던질 때, 엄마의 국어 시간이 시작된다. 사실 훈육이나 혼내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엄마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 언성은 조금 높아질지언정 엄마는 평소보다 차분하게 존댓말로 수업을 진행한다.
“누나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수현이. 수현이도 그런 말 들으면 기분 나쁘지요? 그런 거예요.”
엄마는 보통 역지사지의 덕목을 자주 강조하신다. 이런 것 말고도 엄마가 가르치는 수업은 그냥 교과서 내용이다. 남을 배려하고, 경청하고, 분명하게 말하기. 하지만 우리 국어선생님은 다르다. 동생이 뭔가를 잘못했을 때 엄마는 끝까지 동생의 사과를 기다린다. 끝까지 안 하거나 제대로 안 한다면, 엄마는 동생을 다시 방으로 데려가신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낸다면 엄마는 동생을 안으면서 “잘했어요. 다음에는 그러지 마요~” 라고 말하시면서 우는 동생을 안아준다. 그러면서 사과를 받은 내게도 동생을 안아주라고 하신다. 내가 동생을 안아주면 그제야 엄마의 특별한 국어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린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지는 시간이 아니어도, 이 특별한 국어시간은 항상 이 모습으로 끝난다.
“수현아! 엄마한테 사과해 줘서 고마워요. 엄마도 혼내서 미안해요.”
이 말을 몇 번이고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도 저런 엄마의 가르침을 받았겠지만, 다시 받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말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가르침이자 이 시간이 훈육이 아닌 국어시간인 이유이다.
학교는 지식의 가르침도 있지만 삶의 가르침이 더 중요한 곳이다. 우리 집 작은 학교의 한 국어선생님이 이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다.
고등부 시 부문 장원
창조고등학교(경기) 2학년 이금희
일기에 쓰지 않은 말
높이가 안 맞는 책상들을 둥글게 붙인 과학실
우리는 네 명씩 앉아 가운데 놓인 화분을 바라봤다
키우기로 했던 토마토 줄기에는 잎사귀만 달려 있었다
알맹이는 아직 나오지 않아서
채워질 성장 기록이 많던 구월의 단면
덜 익은 우리도 풀내음을 풍기며 조그맣게 열려 있었다
선생님이 나눠준 일기 겉에는 목표가 정해져 있었다
햇빛을 받으면 모두 빨갛게 변한다고 적어야 했는데
토마토는 다 각자만의 색깔로 피어났다
정해진 답들이 구석구석 매달려 있을 때마다
상처가 맺혀서 자꾸만 엎드려 포기하던 우리
창가 자리 친구는 햇살을 따라 떠나 버리고
따로 크는 법은 몰라서 우리는 그냥 떨어져 버렸다
계속 말라비틀어지던 각자의 알맹이들
덜 익었으니 버텨야지, 우리는 다 그렇게 해왔단다
선생님은 일기에 쓰지 않은 말까지 고치려 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피어날 텐데
어른이 되기 위해 얼마나 헷갈려야 할까
붉어지는 우리처럼 각자의 줄기는 희미해져 갔다
일기를 제대로 보려면 고개를 옆으로 숙여야 해서
둥글게 숨 쉬는 법을 연습하고
끝나가던 수업 시간 속 흔들리는 과학실
하나씩 흐트러지는 게 나인지 교탁인지 모르겠고
화분 속 상처로 야윈 토마토를 바라보면
높이가 다른 책상이 줄기처럼 간간이 뻗어 있었다
우리가 어디에 머물지 고민하던 자리에서
서로의 목소리는 색이 빠진 가을을 향해 더 익어갔다
고등부 산문 부문 장원
안양예술고등학교(경기) 2학년 문시우
충전
“저기 인어 아들 아니야?”
“맞네, 맞아. 인어 아들이네.”
휠체어를 탄 할머니들은 나를 보며 수군거렸다. 할머니들의 손에는 시장바구니가 들려있었다. 나는 못 들은 척 등을 돌리고 허공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내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엄마는 그런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는 건지. 미간에 팔을 올려둔 채 편안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는 휠체어의 충전율을 확인하기 위해 엄마를 향해 다가갔다.
이곳 주민센터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전동 휠체어를 충전할 수 있는 장소였다. 실내용 휠체어와 달리 전동휠체어는 충전이 필요했다. 게다가 엄마가 쓰는 전동휠체어는 폭이 좁은 우리 집 현관을 통과하지 못했다. 외출이 있는 날이면 아침마다 이곳에서 휠체어를 충전해야 했다. 휠체어의 충전율은 엄마의 활동 범위로 직결되었다. 때문에 휠체어 충전은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휠체어를 구매할 때만 해도 충전 1퍼센트당 1킬로미터를 갈 수 있다고 광고했지만 이젠 구식이 되어버린 휠체어는 마을버스를 타고 20분 거리에 있는 해수욕장까지도 간당간당했다.
휠체어 충전소는 언제가 견제가 심했다. 오일장이라도 서는 날이면 시장에 가려는 할머니들과 충전기를 두고 경쟁을 해야만 했다. 곧이어 불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60퍼센트면 많이 한 거 같구먼, 슬슬 버스 올 시간인데.”
그늘조차 없는 더운 날씨 때문에 땀이 삐질하고 나왔다. 나는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는 휠체어에 비스듬히 앉아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내가 어제저녁에 충전 하자고 했잖아. 여기선 눈치 보인단 말이야. 이제 일어나 빨리 가자.”
따가운 햇볕은 마치 나와 엄마를 향한 시선 같았다. 나는 휠체어와 연결된 충전기를 뽑고 막무가내로 엄마를 끌어냈다. 동네 사람들은 엄마를 인어라 불렀다. 그건 엄마가 원래 바다에서 물질을 하는 해녀라서 붙은 별명이었다. 그러나 수경을 낀 엄마는 다가오는 배를 보지 못했고, 그물에 발이 말려들어가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이후 엄마는 언제나 담요로 다리를 가리고 다녔고, 사람들은 담요로 싸여있는 다리가 인어의 지느러미를 닮았다고 해서 인어라 불렸다. 그리고 나는 인어의 아들이었다. 나는 엄마의 휠체어 속도에 맞춰 걸음걸이를 느리게 했다. 저 멀리 방과 후를 끝내고 실내화 가방을 차는 아이들이 키득거렸다. 사람들이 엄마를 인어라 부를 때마다 이성을 붙잡고 있던 얇은 실이 툭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분명 바닷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인어는 좋은 뜻인데. 나는 작은 턱 하나 넘지 못하는 엄마가 부끄러웠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 시내에 있는 재활치료센터에 가는 날이었다. 의사는 신경을 다친 엄마에게 꾸준히 재활치료를 하면 다리를 움직일 수 있을 것이 라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한 걸음 떼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다행히 센터까지는 장애인 택시가 운영했다. 택시를 탄 나는 빠르게 사라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유리막 너머로 재활치료를 받는 엄마와 눈을 맞췄다. 그 시간은 엄마가 내 도움 없이 온전히 걷고 일어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엄마는 수조탱크 같은 곳에 다리를 넣고 천천히 움직였다. 엄마의 다리가 움직이자 기포가 올라왔다. 비록 속도는 느렸지만 그 모습은 한 마리 인어가 바닷속을 유영하는 것 같았다. 물속에서 엄마는 미소를 짓곤 나를 향해 엄지를 날렸다. 그러나 나는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응시했다.
재활치료가 끝나자 사방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예약 시간을 늦게 잡은 탓일까. 장애인 택시는 운영을 종료했다. 나 혼자였다면 택시를 잡아도 됐겠지만 지금은 엄마와 함께였다. 급한 대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휠체어는 보도블록과 버스 문 사이의 한 뼘 거리를 넘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했다. 누군가에게 그저 손가락 한 마디의 거리였지만 엄마에게 그곳은 굴러떨어질 수 있는 날카로운 절벽이었다. 엄마 때문에 출발이 늦자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결국 버스는 정류장에 우리를 버려두고 서서히 멀어졌다.
가로등 불빛이 깜빡였다. 우리는 하염없이 거리를 걸었다. 그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깨진 보도블록과 쓰레기봉투들이었다. 게다가 휠체어의 배터리는 13퍼센트뿐이었다. 체력과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 같았다. 걷다 보니 해안도로가 나왔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어진 그곳에서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걸었다. 그리고 얼마나 더 갔을까. 배터리 방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빠앙’하는 경적과 함께 상향등을 켠 자동차가 우리를 비껴갔다. 문득 집에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인내심의 한계였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참아왔던 짜증을 쏟아냈다.
“그러게 내가 어제 충전하자고 했잖아. 다 엄마 때문이야.”
그러나 화를 낼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육지로 꺼내진 물고기처럼 휠체어를 모는 엄마의 호흡이 가빠졌다.
정적이 돌고 파도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득 엄마는 파도가 보이는 바다에 가자고 했다. 나는 잠자코 엄마의 휠체어를 바다로 끌었다. 전동 휠체어는 일반 휠체어보다 몇 배는 더 무거웠다. 휠체어 바퀴에 모레를 밟는 소리가 울렸다. 코끝을 스치는 바닷바람에는 짭짤한 소금기가 돌았다. 그리고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 나는 엄마를 따라 바다수영을 배웠다. 엄마는 몇 번이나 잠수법과 헤엄치는 법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물을 먹고 자꾸만 가라앉았다. 엄마는 그런 나의 등을 두드려주며 다시 헤엄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휠체어를 탄 엄마가 부끄러웠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엄마와 떨어져 걸었고, 휠체어 충전도 방해했다. 엄마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어쩌면 나도 사람들과 같이 엄마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던 게 아닐까. 어쩌면 내 마음의 여유는 바닥난 휠체어 배터리처럼 방전되어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내 마음에도 충전이 필요했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를 충전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우리는 동시에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바다라면 엄마를 온전히 충전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바다라면 충전이 필요 없을 것이다. 바다에서 엄마는 충전이 필요한 휠체어에서 벗어나 한 마리 인어처럼 자유롭게 헤엄치겠지. 나는 엄마의 손을 지그시 잡았다. 엄마도 내 손을 움켜쥐었다. 나는 엄마의 재활을 기다릴 것이다. 재활이 끝나면 엄마에게 수영을 가르쳐달라고 해야지. 나는 엄마와 함께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상상을 했다.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에게 사과를 건넸다.
“엄마 미안해.”
엄마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를 바라보는 지금은 마음에 충전이 되는 시간이었다.
일반부 시 부문 장원
최해원(인천 부평구 마장로)
산책
늦가을 피렌체 어느 시골 마을 외딴 작은 개울가에 흩뿌려진 나의 마음들을 주워가며 걸었다
정성스레 하나하나 고르고 닦으며 이어 붙여 단정한 별자리로 올려놓았다
어느덧 다빈치가 걸어 다녔다던 피렌체의 거리 온갖 상점들이 가득한 베키오를 지나 산타마리아 두오모까지 이어지는 걸음들 끝에
아 부서져 멈춘 시간에 머물러 있는 어린 나를 발견했다
그 눈물 어린 푸른 별을 안아주며 내가 걸어온 길들을 오래도록 얘기해 주었다
일반부 산문 부문 장원
장미선(인천 남동구 호구포로)
택배상자
유난히도 푹푹 찌는 올해 여름은 그나마 운동이라고는 올빼미처럼 야간 산책으로 연명하던 우리 가족을 꼼짝없이 ‘집순이’, ‘집돌이’로 만들고야 말았다. 대책 없이 푸짐해지는 가족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던 내게 마침 TV홈쇼핑에서 나오는 실내 자전거는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 저거라면 에어컨 밑에서 음악 듣고, TV보고 할 수 있으니 미룰 이유가 없겠지?”
기다리던 배송은 홈쇼핑이라 그런지 바로 다음 날 아주 큼지막한 택배상자가 도착했다. 남편도 내심 반가운지 땀을 뻘뻘 흘리며 조립식 실내 자전거를 조립해 냈다. 우리 가족은 옷걸이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운동을 했다.
다음 날도 뿌듯한 마음으로 운동을 마친 시간 혼자 있는 집에 정적을 깨우는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앞집인데요. 잠깐 여쭤볼 게 있어서요. 혹시 어제 저희 집 택배 상자 보셨나 해서요?”
“네? 무슨 택배요?”
“저희가 실내 자전거를 샀는데 배송 완료 문자는 왔는데 없어서 확인해 보니 기사님 실수로 앞집 배송이 되었다고 해서요.”
“실내 자전거를 받기는 했는데 저희도 구매를 해서… 잠시만요.”
나는 얼른 재활용으로 정리한 택배상자의 운송장을 들여다보니 세상에 이런 일이 떡하니 앞집 주소가 적힌 게 아닌가.
“어머 죄송해요. 마침 저희도 구매를 해서 그게 온 줄 알고 이미 조립해서 사용을 했어요.”
구매한 사이트는 다른데 모델과 색상까지 같을 수가 있다는 당황스러운 일에 앞집 분과 나는 몇 년 동안 눈인사 정도만 나누던 어색한 사이라고 믿기지 않게 아줌마 모드로 변신해 소란스러워졌다. 다행히 이해해 주시고 우리집 실내 자전거도 다음 날 도착해서 앞집분께 전달해 드릴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다시 앞집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혹시 조립 어떻게 하셨어요? 저희 집이 주말 부부라서 제가 해야 하는데 어렵네요.”
택배상자가 옆집과 친하게 지내라고 마법이라도 부린 걸까? 몇 년간 왕래가 없던 옆집에 가서 조립도 해드리고 시원한 맥주도 한 캔 하며 택배상자 에피소드를 떠드느라 어색함도 잊었다. 주말에 남편분이 오면 다시 보자는 약속도 하고 금세 친한 사이가 되었다.
뉴스에서 보면 이웃과 별일 아닌 실수로 오해가 생기고 사고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일이 많다. 우리도 반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잘못 배송된 택배상자 덕분에 좋은 이웃이 생겼다.
마치 예보에 없던 올해 여름 날씨에 만난 시원한 소나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