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새얼백일장 시부문 장원작품

  • 날짜
    2008-04-28 13:20:00
  • 조회수
    4136

-------------------------------------초등3/4학년부
 

강아지
가좌초등학교 4학년
류 한 슬

 

삐그덕 문 열리자마자 달려 나온다.
짧은 꼬리 흔들며 달려 나온다.


“멍멍멍!멍멍멍!”
나를 제일 먼저 반겨주는 강아지.


놀아달라고 멍멍멍.
밥 달라고 멍멍멍.


그러다가 너무 귀찮아서 감방신세.
득득득 계속 문을 긁는다.


그래도 엄마한테 “공부해라!” 혼날 땐
그래도 아빠한테 “책 좀 봐라!” 혼날 땐
최고 좋은 내 친구


혼자서 혼자서 훌쩍이고 있을 때
다가와서 내 얼굴 핥아주는
정다운 내 친구 강아지.

 


-------------------------------------초등5/6학년부


언니
인천 연화초등학교 5학년
나 예 진


하루는 해가 되어
내 마음을 바싹 말려 두고서는


하루는 파도 되어
내 마음을 부드럽게 쓸어 가버린다.


하루는 바다 되어
나에게 등 돌리더니


하루는 바다 되어
살며시 내 곁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나는
언니와 나만의 바닷가를 만든다.


마음 속 깊고 깊은 자리에
매일 새로운 감정으로
바닷물을 채워간다.

 

 

-------------------------------------중학교부


나비
용현여자중학교 3학년
문 정 은


나비가 날아와
봄을 꼭 껴안는다.


금세 발그레해진 봄은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따뜻한 숨을 내뱉는다.


하늘에 나비 한 마리를 놓았더니
금세 봄이 번진다.

 

 

-------------------------------------고등학교부

 

바람 속에서
경기 부천 덕산고등학교 3학년
조연희


큰 소낙비 같은 햇볕사이로
바람이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간다.


잠들었던 들판을 뒤흔들어 깨우고는
차갑게 언 참나무 뒤로 숨었다.
나뭇가지 위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자
녹아내린 자리엔 어린 싹 하나가 수줍게 피어났다.


저 멀리 은빛 자전거 하나, 푸른 숲 속으로 사라지면
바람은 이내 그 곳으로 들어가
딱딱하게 뭉친 흙을 주무른다.
보송보송 부풀어 오른 흙은 자전거를 잡고 늘어진다.
개구쟁이처럼 웃어대던 바람이
숲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바위 뒤에 있던 작은 민들레가
부르르 떨며 바람을 피해보지만
깜짝 놀래키며 장난친 바람 때문에
온 몸이 휘청했다.
순간 하얀 민들레 꽃씨가 멀리멀리 도망간다.


더 어둡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본 바람이
꽁꽁 얼어있는 계곡을 보았다.
살며시 간지럼을 태우는 바람. 졸졸 흘러가는 물에게 주름을 만들어주었다.


익살스런 바람의 장난 속에서 봄은 그렇게 기지개를 켠다.

 


-------------------------------------어머니부


라일락
산곡남중학교 1학년 임정우 어머니
김 덕 희


어제는
두 해전 먼 길을 떠나신
아버지를 뵈러갔다.


사과, 배, 말린 북어
약주 한 병 챙겨들고
생전에 가슴 활짝 내어주셨던
내 아이 앞세워서
아버지를 뵈러갔다.


따뜻한 봄볕과
향그러운 봄향내
한상가득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짧은 만남 내려놓고
돌아서는 무거운 발
“아니다. 어여가라.”
손사래를 치셨다.


돌아오는 길
물감처럼 번져가던
차 창밖의 라일락 꽃 덩어리.


딸아이 귀가길 걱정으로
코끝에 매달려온
아버지의 사랑
라일락 향기.